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 혐의를 받는 러시아를 상대로 고강도 추가 제재에 나선다. 유럽은 최대 70%를 의존하는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는 고육지책까지 동원해 제재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태세다.
5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유럽연합(EU) 및 주요 7개국(G7) 국가들과 공동으로 대러 추가 제재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 제재에는 러시아에 대한 모든 신규 투자 금지와 러시아 금융기관 및 국영기업 제재 강화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새로운 제재 패키지는 엄청난 비용을 부과해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미 재무부는 러시아 정부가 미국 금융기관 계좌로 달러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발표하며 “러시아는 남은 달러 외환을 모두 소진하거나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두 딸인 마리아 보론초바(36), 예카테리나 티코노바(35)도 추가 제재 대상으로 거론된다. 지금까지는 푸틴의 가족이 서방 제재 명단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블룸버그통신은 “푸틴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상징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러시아의 온라인 암시장 다크넷마켓을 통한 암호화폐 거래도 제재 대상에 오른다.
이는 서방이 최소 수백 명의 민간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러시아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제재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첫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라며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응을 촉구했다.
유럽이 러시아산 석탄 금수 조치를 검토하는 데도 이 같은 강경론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러시아산 석탄 수입 금지 조처를 EU 회원국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석탄 수출국으로 유럽에서 쓰이는 석탄의 49%를 차지한다. 발전용 석탄은 70%가 러시아산이다. 유럽은 지금까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미국의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에 동참하지 않았으나 민간인 학살을 계기로 분위기가 급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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