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에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건강보험법 등에서 한 해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하는 조항이 올해를 끝으로 일몰되기 때문이다. 일상 회복 이후 의료 이용이 정상화하면 건보 재정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재정 안정화를 위해 한시 규정을 영구 규정으로 바꾸는 동시에 10%대 초·중반에 머물고 있는 실질 지원율을 2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보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은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6%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적시하고 있는데 이들 규정의 시효가 올해까지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내년부터 정부 지원이 끊기면 대규모 적자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건보에 따르면 지난해 건보 수입은 80조 4921억 원, 지출은 77조 6692억 원, 당기수지는 2조 8229억 원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진단·검사비, 격리 치료비, 재택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2조 1000억 원을 투입하고도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만약 지난해 정부 지원금이 없다고 가정하면 지난해 당기수지는 2조 8229억 원 흑자가 아닌 6조 7491억 원 적자다.
건보 재정이 지난해 흑자를 기록한 것은 코로나19로 일반적인 의료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일상 회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의료 이용 정상화로 건보 지출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도 구조적으로 건보 재정 건전성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지출된 건보 진료비 중 65세 이상이 43.4%를 썼다.
전문가들은 건보 재정의 안정을 위해 정부 지원 시효 기간을 연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몰 규정 자체를 폐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법정 기준 20%에 늘 미치지 못하는 정부 지원율을 올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16.5%), 박근혜 정부(15.4%), 문재인 정부(13.8%) 모두 20%에 미치지 못하는 지원율을 기록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정부 지원 제도는 예상 수입·상당 금액 등 모호한 규정으로 인한 과소 지원과 한시적 지원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갖고 있다”며 “한시적 지원 규정을 삭제하고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총 4개의 관련 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은 건보법·국민건강증진법의 한시법 부칙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국민건강증진법 한시적 특례 문구를 ‘2022년 12월 31일까지 매년’에서 ‘매년’으로 수정하는 안을 제출했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과소 추계 논란이 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실제 수입액과 예상 수입액의 차이로 인한 차액은 차차년도에 계상하도록 했다. 이정문 의원과 정 의원, 이종성 의원 역시 실제 수입액과 지출액을 기반으로 지원액을 정하도록 안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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