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가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JTBC 새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극본 박해영/연출 김석윤)가 지난 9일 뜨거운 호평 속에 첫 방송됐다. '인생작 메이커'로 통하는 김석윤 감독과 박해영 작가의 재회는 기대만큼이나 빛났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는 공감을 안겼고, 정감 넘치는 풍경과 곱씹을수록 마음이 가는 대사가 시청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촌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삼 남매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이들의 인생에도 반짝이는 '해방'의 순간이 찾아올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에서도 한참 떨어진 산포마을, 그곳에는 의좋은 염씨 삼 남매가 살고 있었다. 평범하디 평범한 이들에게는 저마다 인생의 고민거리가 있다. 조용한 막내 염미정(김지원)은 모든 인간관계가 어려웠다. 남들은 서너 개씩 드는 사내 동호회도,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자리도 염미정은 불편하기만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염미정은 언제나 '주변인'이었다.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일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지리한 날들은 계속됐고, 염미정은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가고 있었다. 버텨내야만 하는 인생은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무채색이었다.
둘째 염창희(이민기)는 애인과 이별했다. 이별의 순간 애인으로부터 날아온 "넌 견딜 수 없이 촌스러워! 끔찍하게 촌스러워"라는 말은 염창희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찬물 샤워를 해봐도, 죽어라 밭일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서울에 살지 못한다면, 차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차 얘기만 나와도 불같이 화내는 아버지가 허락할 리 없었다. 그야말로 '노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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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염기정(이엘)은 사랑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랜만의 소개팅은 꽝이었다. 평일도 아닌 주말에 그 먼 서울까지 행차했는데, 소개팅 상대가 싱글 대디였던 것. 분노한 염기정은 친구를 만나 거침없이 속엣말을 털어놨다. 그런데 하필, 옆 테이블에 누가 봐도 싱글 대디인 한 남자가 생일을 맞은 딸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 남자, 조태훈(이기우)은 알고 보니 막냇동생의 회사 동료였다. 완벽하게 민망한 상황이었다.
삼 남매의 일상에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돈 들여 한 머리마저 망하자, 염기정은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동생들과 동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무나 사랑할 거야"라며 변화를 다짐했다. 그리고 정말 '아무나' 만나겠다는 언니의 말을 듣던 염미정의 눈에 구씨(손석구)가 들어왔다.
사실 염미정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은행으로부터 대출금을 상환하라는 독촉 연락을 받고 있었던 것. 그러나 정작 그 돈을 빌려간 이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식구들 몰래 독촉장을 숨겨야 했던 염미정은 옆집 사는 남자 구씨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불쑥 구씨를 찾아간 염미정은 우편물을 대신 받아달라고 했다. 이름도 모르고, 말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지만, 매일 같이 밥을 먹어야 했던 '불편한 남자'가 지금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간 적 없던 염미정의 눈에 구씨가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 염미정의 선택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람들과 관계 맺지 않고, 말없이 일만 하는 구씨는 사람들 틈에 섞이지 못하는 염미정과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는 앞으로도 주목해 봐야 할 포인트다. 좁디좁은 동네인 산포에 온 정체 모를 외지인 '구씨'의 숨겨진 사연 또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김석윤 감독, 박해영 작가의 호흡은 역시 달랐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도 따뜻함을 담아내고, 잔잔한 흐름 속에도 요동치는 감정의 물결을 그려냈다. 여기에 이민기, 김지원, 손석구, 이엘이 완성한 현실적인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제대로 일으켰다. 인물들의 고민이 현실감 있게 와닿은 데는 인물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한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 시청자는 이들을 따라가며 언젠가 한 번쯤 느껴봤던 감정들을 떠올리고, 공감했다. 여기에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담아낸 박해영 표 '공감 대사' 역시 진가를 발휘했다. 인물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마냥 따스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야기 속에서도 '힐링'을 느끼게 했다.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행복하지 않은 삶, 이상하게 어긋나는 것 같은 인생의 한복판에서 변화를 예고한 이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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