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自繩自縛)은 자기의 줄로 자신을 묶는다는 뜻이다. 중국 후한 시대 역사가 반고가 전한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漢書)에서 유래했다. 노비가 백정과 다투다 그를 죽이자 고을의 태수가 노비의 주인에게 벌을 내리려고 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그 주인에게 노비가 스스로 포박하고 화살로 귀를 뚫어 법정에서 사죄하게 해야 한다고 권했다. 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벌어진 사건으로부터 이 고사성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곤장 메고 매 맞으러 간다’는 우리 속담과도 비슷한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불리는 검찰의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를 당론으로 정하고 관련 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후 검찰에 남겨진 6대 범죄 수사권마저 빼앗는 법안을 통과시켜 5월 초 문재인 대통령 퇴임 전에 국무회의에서 공표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수사권을 넘길 곳도 정하지 않은 채 대안도 없이 거대 의석의 힘으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치우겠다는 것이다. 속도전을 펴는 이유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란다. 70년 형사 사법 체계를 공청회나 여론 수렴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막무가내로 뒤흔들어도 되나. 민주당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검찰의 힘을 빼야 한다는 검찰 개혁이다.
그러나 여권의 검찰 개혁론에는 진정성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 기존의 검찰 조직을 활용해 거침없는 적폐 수사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구속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성과를 인정해 관련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수사에 임했다. 윤 총장 취임 직후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부터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라임·옵티머스 펀드 비리 등 권력형 비리 사건들이 터져나왔다. 검찰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자 내놓은 게 검찰 개혁이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인사권을 동원해 권력형 비리 수사팀을 해체하고 그것도 모자라 수사지휘권을 동원했고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처분까지 내렸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의 속도전을 위해 꼼수도 동원하고 있다. 법안을 단기에 밀어붙이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당 의원을 빼고 자당 출신의 무소속 의원을 배치했다. 여야 3 대 3 동수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원회에 친여 무소속을 넣어 위원 비율을 4 대 2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이러면 90일간의 안건조정위 논의 기간 없이 4월 국회에서 곧바로 처리할 수 있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언론중재법·탄소중립법을 강행 처리할 때도 이런 꼼수를 동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달 초 “모든 당력을 총 집중해 정치 탄압과 정치 보복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의 각종 권력형 비리와 20대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관련된 혐의에 대한 수사의 예봉을 꺾기 위해 방탄 입법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 전 후보는 대장동·백현동 게이트,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법인카드 유용 등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걸핏하면 수사와 기소권 분리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검찰 개혁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무려 27개국(77%)이 헌법과 법률로 검사의 직접 수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검찰 수사권의 완전 폐지는 헌법이 검사에게 영장신청권을 부여한 헌법의 취지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진정한 검찰 개혁은 검찰의 힘을 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데 있다. 권력형 비리, 금융 범죄 등에 수십년 동안 쌓아온 검찰의 수사 노하우를 사장시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검찰 개혁을 물고 늘어졌지만 그 결과는 정치 경력 1년도 안 된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 당선이었다. 검수완박은 국민적인 저항을 초래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몰락을 이끄는 자승자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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