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연 1.25%인 기준금리를 1.50%로 올리면서 금융 소비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요 시중은행들이 정기 예적금 금리를 올린 점은 호재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지표로 사용되는 금융채와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 등 시장금리도 덩달아 올라 갚아야 할 이자 규모가 커지면서 어떤 대출 상품을 이용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과 대출 상품별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행 이탈할까 서둘러 수신금리 올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주요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수신 상품 금리를 올리거나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한은행은 18일부터 정기 예적금 상품 36종의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인상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상품인 ‘아름다운 용기 정기예금’ 금리는 0.4%포인트 인상돼 최고 2.2%의 금리가 적용된다. 1년 만기 ‘알.쏠 적금’은 최고 3.0%, ‘신한 S드림 적금’은 가입 기간별로 최대 0.3%포인트 금리가 인상된다. 국민·우리·하나·농협은행도 수신 상품 금리를 인상하거나 인상 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도 18일부터 정기 예적금 39종의 금리를 최고 0.4%포인트 올린다. 3년 만기 기준 ‘KB반려행복적금’ 최고 금리는 연 3.60%, 1년 기준 ‘KB더블모아 예금’은 최고 연 2.30%로 변경된다. ‘KB골든라이프연금우대예·적금’과 ‘KB두근두근여행적금’의 금리를 0.4%포인트 인상한다. 하나은행은 18일 하나의 정기예금 등 수신 상품 5종에 대한 기본 금리를 0.25~0.35%포인트, 21일부터는 나머지 예적금 상품 27종의 기본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다. 인터넷은행 중에는 케이뱅크가 인상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들이 서둘러 수신 금리를 올린 것은 시장금리 상승으로 시중 부동자금들이 단기화하며 은행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만기가 정해진 정기예금 비중은 낮아진 반면 언제라도 인출 가능한 요구불예금과 기업자유예금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2년 이상 장기 정기예금 비중은 5.6%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6.9%보다 떠 쪼그라들었다.
스마트한 대출전략 필요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해 2.5%까지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신규 대출자는 물론 기존 대출자까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신용대출과 전세대출은 물론 변동형·혼합형(5년 고정형) 주담대를 이용하는 차주들도 이자 규모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택 매수나 상환 시기 등을 고려해 대출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은 입을 모은다.
변동형 주담대(6개월)는 매월 지속적으로 바뀌는 코픽스를 반영해 금리가 월 단위로 바뀐다. 혼합형 주담대는 금융채 5년물(AAA)을 기준으로 해 5년간 금리를 고정한 후 재조정하는 상품이다. 일반적으로 금리 상승기에는 고정형을, 금리 인하기나 대출 기간이 짧은 차주들은 변동형을 선택해왔다. 하지만 최근 혼합형 주담대 지표 금리인 금융채 금리가 치솟으면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중 3곳의 상단금리는 6% 중반을 넘어 7%에 임박한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전날 기준 금융채 AAA등급 5년물 금리(민평 평균 기준)는 3.335%로 2개월(1월 14일·2.490%) 만에 0.845%포인트나 뛰었다. 이날 기준 5대 은행의 혼합형 주담대 금리는 3.90~6.39%로 상단금리는 6% 중반대를 기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 대출자들은 그나마 금리가 낮은 변동형 주담대로 몰리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중 76.1%가 변동 금리 대출이다. 가령 직장인 A 씨가 이날 기준금리로 서울에서 아파트 구입을 위해 4억 8000만 원을 대출받았다면 변동형 주담대 이용 시 1년간 부담해야 할 원리금 상환액(연 3.40%·30년 만기)은 2554만 원으로 혼합형 주담대 상환액(2716만 원)보다 162만 원 적다.
정책 모기지 상품 등 우선 이용
하지만 변동형 주담대 금리도 오름세를 보이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5년간 금리를 고정할 수 있는 혼합형 상품이 유리하다는 조언이다. 은행연합회가 이날 발표한 변동형 주담대와 전세대출의 지표 금리인 3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1.72%로 한 달 전보다 0.02%포인트 상승했다. 2019년 6월(1.78%) 이후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잔액 기준 코픽스(1.50%)와 신잔액 기준 코픽스(1.17%)도 한 달 전보다 각각 0.06%포인트, 0.04%포인트 뛰었다. 코픽스 인상에 따라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 금리도 16일부터 올라간다. KB국민은행은 3.40~4.90%에서 3.42~4.92%, 우리은행은 3.63~4.84%에서 3.65~4.86%로 금리가 오른다. 농협은행도 3.18~4.38%에서 3.20~4.40%로 상·하단이 각각 0.02%포인트씩 인상된다.
조현수 우리은행 양재남금융센터 PB팀장은 “지금처럼 한은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린다면 신규 주담대 이용자들은 5년간 금리가 바뀌지 않는 혼합형 상품을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면서 “다만 국내외 경기 변화에 따라 금리 인상 속도가 조절될 수 있기 때문에 금리 방향성이나 변수 등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대출 조건이 된다면 정책 모기지 상품인 적격 대출 등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적격 대출은 주금공이 은행이나 보험사를 통해 공급하는 최장 40년 장기 고정 금리 정책 대출 상품으로 최대 대출 한도는 5억 원이다. 이달 SC제일은행(4.17%)을 제외한 대부분 금융기관에 적용되는 적격 대출 금리는 연 3.95%로 시중은행의 혼합형 주담대 금리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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