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년 4월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가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을 지배하던 크림 칸국을 멸망시키자 주민들은 환호했다. 인신매매와 약탈을 일삼던 크림 칸국의 소멸로 평화와 안정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크림 칸국은 오스만제국의 비호 아래 걸핏하면 러시아 접경을 침범해 수만 명씩 노예를 잡아가기도 했다. 점령지에 새로운 러시아(New Russia)라는 뜻의 ‘노보로시야’라는 러시아어 이름을 붙인 예카테리나 2세는 카자크 농부 등을 이곳에 정착시켜 밀 농사를 짓게 했다. 노보로시야의 농업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우크라이나 동부는 세계적 밀 곡창지대로 꼽히게 됐다.
노보로시야는 문화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어권에 속한다. 도네츠크주·루한스크주·오데사주·크름반도 등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과 러시아의 크라스노다르주·스타브로폴주·아디게야공화국 일대,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 등이 모두 노보로시야로 묶인다. 1922년 소비에트연방 일원이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으로 편입됐던 노보로시야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영토에 포함됐다. 그러나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크름반도를 강제 병합하면서 ‘노보로시야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변해 노골적으로 팽창주의 본능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키이우 함락에 실패하고 전선을 돈바스 지역으로 변경하면서 노보로시야가 새삼 거론되고 있다. 최근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군이 돈바스 전체를 장악하고 크름반도와 연결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국의 군사 분석가 저스틴 크럼프도 “러시아가 돈바스에서 마리우폴을 거쳐 크름반도,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연결하면 노보로시야 재건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푸틴은 역사 속에서 ‘노보로시야’란 미명을 끄집어내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하는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목숨을 걸고 푸틴의 광기에 맞서고 있다. 우리도 중국 등 주변 강국의 팽창주의에 맞서 주권·영토를 지키기 위해 힘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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