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평검사들이 19일 한자리에 모였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추진과 관련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평검사들은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검찰 지휘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표를 반려하고 면담을 진행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휘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비등한 가운데 검사들의 집단행동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전국 평검사 대표들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모여 비공개로 ‘검수완박’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전국 18개 지검과 42개 지청 대표 외에도 개별적으로 참석한 인원까지 207명에 달하는 검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당초 회의는 오전에 열릴 예정이었지만 주최 측이 퇴근 시간 이후로 시간을 늦추면서 참석 인원이 예상보다 더 늘었다. 전국 평검사회의 공보를 맡은 윤경 의정부지검 검사와 김진혁 대전지검 검사는 회의 시작 전 “주요 안건은 ‘검수완박’ 법안의 문제점 및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이라며 “안건 자체에 대해 제한을 두지 않고 전국 평검사들의 총의를 모아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회의에서는 현 검찰 지휘부와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일부에서는 김 총장을 비롯한 지휘부 총사퇴와 평검사들의 집단 사퇴도 거론됐다. 회의에 참석한 한 검사는 “그동안 검수완박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지휘부의 무능이 드러났다”며 “현재로서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총장 사표 반려는 검수완박의 책임을 검찰 혼자서 지라고 등 떠미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청와대가 김 총장의 사표를 반려한 만큼 향후 국회 논의와 검찰 지휘부의 대응을 차분히 지켜보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회의에 참석한 한 검사는 “평검사들은 현장에서 사건을 직접 처리하는 실무자이기 때문에 관리자들과는 사안을 대하는 입장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며 “검찰총장 사표 반려가 전체 평검사들의 의견에 큰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난상 토론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회의는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이날 검사들은 오후 9시30분께 출입기자들에게 “헌법상 재판 청구권 침해와 적법절차 원칙의 훼손 등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며 “기소와 수사의 분리는 결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 데다가 기소권의 적정한 행사를 위해서도 수사가 분리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중간 회의 결과를 전해왔다. 또 검찰 수사의 공정성 확보 방안과 자정할 부분에 대한 논의도 언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평검사들은 검수완박에 따른 문제점과 사례, 향후 대응 방식 등 회의 결과를 정리해 20일 입장문 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평검사회의는 2003년 3월 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방안 등을 주제로 열린 뒤 지금까지 총 6차례 개최됐다. 가장 최근에 열린 평검사회의는 2020년 11월로,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배제를 발표하자 전국 평검사들이 잇달아 회의를 열고 추 장관의 처분이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검찰 지휘부도 평검사회의가 ‘검란(檢亂)’의 중대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김 총장은 평검사회의에 대해 “검사들이 자발적으로 일과 이후에 모여서 의견을 내는 것이라 제가 왈가왈부하거나 결정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제반 사정을 충분히 살펴서 현명한 결론을 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검사회의에 이어 20일에는 전국 부장검사회의도 예고돼 있다. 전국 검찰청 소속 부장검사 300여 명 가운데 일선청 선임부장 등 50여 명이 참석해 검수완박 법안의 문제점 등을 논의한다. 대검은 22일 검수완박과 관련해 법조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검찰 수사기능 폐지 법안 관련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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