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합의하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장동, 월성 원전,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의 수사가 수개월 내에 마무리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재안이 유예 기간을 두고 있지만 검찰이 이들 사건 수사에 마침표를 찍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22일 여야가 합의한 국회의장 중재안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는 검찰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 범죄로 제한한다는 점이다. 유예 기간은 4개월로 명시하고 있다. 중재안이 이달 중 국회의 문턱을 넘어 5월 초 국무회의 의결을 거칠 경우 검찰에 허락된 시간은 단 5개월여뿐이다.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로비 수사의 경우 윗선 규명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도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게 배임 교사 혐의를 적용할지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서울 동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은 압수 수색 자료 분석과 소환 조사가 이뤄지는 등 아직 수사 초기 단계다.
수사 대상이 전직 공무원이라 유예 기간이 끝나면 사건을 경찰 또는 앞으로 세워질 중대범죄수사청(가칭) 등으로 넘겨야 한다. 법조계 안팎에서 “여권이 연루된 현안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장동, 월성 원전,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 도중 다른 사정 기관으로 넘긴다는 점 자체가 난센스”라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자료만도 수백 쪽에 이를 수 있어 검찰에서 사건을 넘겨받는 곳도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재안 자체가 한시적 직접 수사 허용일 뿐 결국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박탈한다는 점에서 검찰 내 수사 의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급격한 형사 사법 시스템 변화에 따른 수사 공백으로 자칫 권력형 비리 사건에 ‘면죄부’만 주는 최악의 사태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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