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일본 오사카시 도심 나가호루에 10전만 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점포가 새로 문을 열었다. 당시 10전은 물가 변동을 감안하면 오늘날 180엔(1740원)에 달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거의 다 갖춘 가게였다. 일본의 백화점 기업 다카시마야가 처음 선보인 ‘십전 균일 매장’이었다.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자 1932년까지 교토·나고야·도쿄 등에 50여 개의 점포를 열었다. 물가가 오르면서 이름은 이십전 매장, 오십전 매장 등으로 바뀌었지만 저가 균일 가격 판매 형태는 유지됐다. 이 매장이 일본에 널리 퍼진 100엔숍의 기원으로 추정된다.
실제 100엔숍은 1985년 아이치현 가스가이시에 처음 등장했다. 1990년대로 접어들어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장기 불황이 이어지자 이런 가게들이 전국으로 퍼졌다. 현재 5500여 개의 저가 점포 대부분이 체인점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이소산업·세리아·캔두·와츠는 이런 점포를 운영하는 4대 기업으로 꼽힌다. 이들은 상품을 값싸게 조달하기 위해 전문 납품 업체를 지정해 생산자와 직거래하고 생산자를 지원하되 판매 상품 개발과 표준화에 적극 개입했다. 한국의 1000원숍, 미국의 1달러숍, 영국의 99페니숍, 중국의 1위안숍과도 비슷하다. 일본 다이소에 납품하던 아성산업은 일본 회사와 합작해 한국 다이소를 설립해 1000여 개의 점포를 열었다.
100엔숍의 4개 점포가 최근 폐점한 데 이어 다음 달까지 도쿄도에서 9개 점포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상품을 조달한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데 엔화 가치는 오히려 2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100엔숍은 높은 수입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258%에 이르는 일본 국가채무의 엄청난 이자 부담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면서 엔화의 추락이 빚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00엔숍의 잇따른 폐점은 ‘엔저 덫’에 걸린 일본 경제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 플랜을 가동하고 구조 개혁과 재정 건전화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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