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의 최후 격전지인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을 피해 지하벙커로 들어간 지 두 달만에 탈출한 민간인들이 “암흑의 기간이었다"며 참혹한 내부 상황을 전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모습과 지하 벙커의 참혹한 상황을 보도했다.
지난 1일 공개된 첫 탈출 당시 영상엔 두 달 넘게 지하 터널에 대피했던 여성들과 아이 등이 우크라이나군의 호위를 받으며 사다리에 오르는 모습이 담겼다. 이들이 빠져나온 지상은 폭격으로 건물 잔해가 널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수백 명이 지하 요새를 떠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탈출한 사람들은 내부 상황을 전했다. 벙커를 탈출한 나탈리아 우노마노바는 “이젠 화장실을 가기 위해 횃불을 들거나 가방이나 깡통을 쓰지 않아도 된다”며 “방공호 출구 쪽과 일부 계단 위쪽에서는 산소가 부족해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이날 함께 탈출한 엘레나 야툴로바는 “하루에 40명 이상이 통조림 6개로 만든 스프를 나눠 먹으며 한 달을 지냈다”고 했다. 올가 사비나는 “매일 포격이 이어지는데 어떻게 온전할 수 있었겠느냐”며 “포격이 있을 때면 항상 지하 벙커에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일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우크라이나 민간인 100명이 처음으로 대피했다. 탈출한 민간인 100여명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에 도착했다. 대부분 여성, 어린이, 노인으로 음식과 의약품 등을 제공 받을 예정이다.
다만 지난 주말 1차 탈출 이후 러시아군이 다시 포격을 시작하면서 대피는 차질을 빚고 있다. 아조우스탈을 지키는 아조우연대의 데니스 슐레가 사령관은 “수십 명의 어린이가 아직도 지하 벙커에 있다”며 “그런데도 첫 번째 그룹이 탈출한 직후 모든 종류의 폭격이 재개됐다”고 말했다.
2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그리스 국영 TV ERT와 인터뷰에서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인 50만 명가량이 불법, 강제로 러시아에 끌려갔다”고 밝혔다. 그는 제철소에서 탈출해 버스에 오른 민간인들이 러시아로 끌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도 이 같은 우려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민간인들을 마리우폴에서 자포리자로 대피시키기 위한 버스 50대가량이 아조우스탈 제철소 출입문에서 대기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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