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는 그 상황에서 섕크가 나더라고요. 새벽 4시에 깼죠. ‘연습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하고 다시 잠들었어요.”
‘화제의 준우승자’ 황유민(19·한국체대)은 16일 남서울CC 연습장에 있었다.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평소처럼 연습했다. 전날 혈투라고 할 수 있는 경기를 치렀지만 휴식보다 연습에 대한 목마름이 더 컸기 때문이다.
황유민이 말한 ‘그 상황’은 15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4라운드 18번 홀(파4) 상황이다. 투어 간판 박민지(24)와 같은 조에서 공동 선두를 달리던 황유민은 이 홀 두 번째 샷을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뜨리는 바람에 1타 차 공동 2위로 마감했다. 발보다 낮은 위치에 있던 페어웨이의 볼은 그린에 미치지 못했고 벙커 샷 뒤 파 퍼트는 홀을 외면했다.
중반까지 단독 선두를 달린 황유민은 우승까지 내달렸다면 최혜진(23) 이후 4년 9개월 만의 아마추어 우승으로 내년 정규 투어 시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 있느냐는 물음에 황유민은 자연스럽게 “미스가 크게 났다”는 마지막 홀 세컨드 샷을 얘기했다. "핀까지 92m 남기고 48도 웨지로 쳤어요. 볼 위치가 디보트(잔디의 팬 자국)이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어려운 디보트는 아니었고요.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는데도 샷 하기 전에 잘 친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로 들어간 거죠. 다시 친다면요? 자신 있게 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들어갈 것 같아요.”
아쉬움만큼 얻은 것도 많은 대회였다. 황유민은 “구질을 다양하게 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그런 부분에서 미스가 많았다. 부족함을 알았으니 더 연습하고 보완해야겠다”면서 “한편으로는 샷이 안 좋아도 퍼트만 잘 따라주면 언제든지 잘 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얻었다”고 했다.
2만여 구름 갤러리 앞에서 챔피언 조로 경기 하는 새로운 경험을 한 황유민은 “지난해 한국여자오픈(공동 4위·박민지 우승)은 무관중이어서 이렇게 갤러리가 많은 대회는 처음이었다”며 “하지만 갤러리가 많다고 해서 긴장이 된 것은 아니었다. 더 재밌고 힘이 났다. 저를 모르실 줄 알았는데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했다”고 했다.
성적만큼 화제가 된 것은 드라이버 샷 거리였다. 가녀린 체구로 250야드를 가볍게 날렸고 내리막이 있는 홀에서는 280야드도 찍었다. “제가 여태까지 했던 운동량은 장난이라고 할 정도로 선수촌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는 국가대표 황유민은 “몸이 좋아지니까 헤드 스피드도 3마일 정도 늘어서 드라이버 샷이 평균 10야드 정도 멀리 간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 뒤 주변에서 들은 말들을 정리하면 대개 ‘아쉽지만 그래도 자랑스럽다’다. 캐디를 맡아준 친한 국가대표 오빠 유현준이 최종 라운드 중 한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네 덕분에 내가 이런 자리에 있다니 자랑스럽다’.
다음 달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할 예정인 황유민은 7월에는 점프(3부) 투어 시드순위전에 참가하며 프로로 전향한다. 점프 투어에서 잘 치면 드림(2부) 투어로 올라가고 거기서 또 잘 하면 내년 정규 투어 시드를 얻는다. 황유민은 “저만 믿고 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국가대표 자격을 1년 더 유지하느라 내년에 정규 투어에 올라가도 동갑 친구들보다는 1년이 늦다. 그래도 황유민은 “조급함은 전혀 없다”고 했다. 지난달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훌훌 털어낸 지 오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황유민은 이듬해 첫 출전한 대회에서 86타를 치면서 선수의 길을 걸었다. 황유민은 “‘시원시원하다’ ‘저 선수는 정말 뭔가 다르다’ 이런 말을 앞으로 듣고 싶다”며 “‘깡’이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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