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실상 서방세계 전체를 상대로 일으킨 ‘전쟁(war)’은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범죄(crime)일 뿐 아니라 어쩌면 러시아 국민에 대한 가장 심각한 범죄입니다.”
스위스 제네바 주재 러시아 외교관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대통령을 이같이 공개 비판하며 사임했다고 AP통신 등이 2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보리스 본다레프(41) 러시아 외교관은 이날 오전 제네바 주재 유엔 러시아대표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본다레프는 40여 명의 동료 외교관 등에게 보낸 영문 입장문을 통해 “외교관 경력 20년간 외교정책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인) 2월 24일만큼 조국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그는 AP통신에 “현재의 우리 정부 행태를 참을 수 없다”며 “공무원으로서 내 몫의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말했다. AP는 러시아 외교관이 자국을 공개 비판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본다레프는 입장문에서 러시아 지배층도 겨냥했다. 그는 “이 전쟁을 구상한 자들은 단 한 가지만 원한다”며 “영원히 권좌에 남아 무제한의 권력을 누리며 완전한 면책을 누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그들은 적당히 필요한 만큼의 생명을 희생할 용의가 있다”며 “이미 수천 명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이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러시아 외무부의 수장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 대해 “수많은 동료들이 전문가이며 지식인인 그를 높이 평가해왔으나 이제 그는 끊임없이 분쟁 성명을 발표하고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사람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늘날 러시아 외무부는 외교는커녕 전쟁을 조장하고 거짓말과 증오만 일삼고 있다”고 개탄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본다레프 사임에 대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러시아 관영 매체들도 보도를 자제하며 쉬쉬하는 분위기다. 다만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특별 군사작전’이 아닌 ‘전쟁’으로 표현하는 등 전쟁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자에 대해 최대 징역 15년 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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