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2년여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가 세계를 강타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향방에 대한 논쟁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 모인 경제계 ‘빅샷’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경제에 주는 의미와 함께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인지 여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23일(현지 시간) 미 경제 방송 CNBC에 따르면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공급망과 에너지 위기 한가운데에 놓인 유럽은 경기 침체에 빠질 것으로 확신한다”면서도 “미국은 내년까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노동시장이 강하고 소비자들의 재무 상황도 좋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도 미국 경기에 대한 낙관론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현지에서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내년까지는 걱정 안 한다. 침체 확률이 15% 또는 20% 정도 될 것”이라며 “소비자들은 여전히 돈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브라이언 모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CEO도 미국 소비가 강하다는 데 방점을 뒀다. 그는 “고객들의 계좌가 계속 안정적”이라며 “5월 초반 몇 주 동안 (고객들의) 소비가 10% 늘었다. 이들이 가진 돈이 결국에는 줄겠지만 아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 주장의 근거가 되는 미국 4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9% 증가하며 탄탄한 성장세를 보였다. 높은 인플레이션 탓에 월마트와 타깃 등 대형 유통업체들의 이익이 급감하면서 소비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지만 아직 미국 경제가 통째로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하지만 하방 위험이 크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컸다. 포럼에 참석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경기 침체에 관한 질문에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금융시장 변동성 급증 등으로 세계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시험에 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가 이코노미스트 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이날 내놓은 결과를 보면 ‘다음 경기 침체가 시작되는 시점’을 묻는 질문에 2023~2024년이라고 답한 비율이 61%에 달했다. 응답자들 중 71%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올 1분기나 2분기에 정점을 찍는다고 봤으며 가장 큰 경기 하방 위험으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실수를 꼽은 응답이 40%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경기 둔화(34%)가 지목됐다. 올해 경기 침체를 피하더라도 연준의 과도한 금리 인상과 공급망 문제가 향후 경기를 침체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 공동창업자는 “금리가 당분간 올라가면서 우리를 ‘바나나’로 밀어 넣을 수 있다”면서 “지금이 ‘바나나’인지는 모르겠고, 침체와 ‘바나나’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바나나’란 경기 침체(recession)를 뜻하는 말로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인플레이션 태스크포스를 맡았던 알프레드 칸이 침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돌려 말한 데서 유래한다.
월가의 이름난 투자자인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파트너스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도 비관론 쪽에 섰다. 다보스 현지에서 CNBC와 인터뷰한 그는 연준의 과잉 대응 가능성을 걱정하면서 “연준이 (금리 인상 목표를 향해) 자동 주행 형태로 가고 있으며 시장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면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전고점 대비 40% 폭락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지적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S&P500은 고점 대비 약 17.5% 하락한 상태다.
마이너드 CIO는 또 “비트코인이 개당 800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며 시장 전반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이날 2만 9000달러 선을 오르내렸다.
행사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앞서 환영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향후 역사책에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이후의 질서 붕괴로 여겨질 것”이라며 “이번 전쟁은 정말 역사의 전환점이다. 향후 몇 년간 우리의 정치적·경제적 지형을 다시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26일까지 개최되는 다보스포럼에는 50여 명의 국가 수반을 비롯해 기업인·금융인·학자 등 2500명이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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