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예술 같은 건 사람의 상상력을 벗어나야 하고, 중요한 건 창의성과 파격이라 생각해요. 이번 ‘사계의 노래’ 작업도 그 연장선에 있어요. 국악이건 서양음악이건 절정의 어떤 경지에 오른 그 자체가 세련된 거지, 서양음악을 해도 그 수준이 낮으면 촌스러워요. 무조건 트렌디하다고 해서 세련되지는 않아요”(김용호 사진사)
사진과 음악, 이질적일 수도 있는 두 장르를 하나로 묶은 독특한 공연이 열릴 예정이라 눈길을 끌고 있다. 우선 ‘사계의 노래’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구 경기도립국악단)이 오는 11·12일 경기아트센터에서 개최하는 공연이다. 사진은 이들 6명의 소리꾼들이 미리 선곡했던 자신들의 경험과 감정, 인상이 담긴 곡을 부르는 동안 무대 뒤의 대형 스크린에 띄워진다.
이번에 음악과 사진을 융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김용호 사진가는 그동안 40년 넘게 화려하고 감각적인 패션사진, 광고사진들을 무수히 작업해 왔다. 최근 서울 서초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그는 국악과 자신의 작업이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는 질문에 “그동안 국악 하는 분들과 접점이 적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원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참여를 제안했고, 그는 ‘사계의 노래’라는 제목의 의미가 ‘사적인 계절의 노래’라는데 주목했다. 처음에 출연자들의 다양한 얼굴을 찍는 정도로 접근했다가 사진을 통해 음악의 메시지도 전달해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는 출연자들을 스튜디오로 불러 무대에서 선보일 곡들을 불러달라고 했다. 동작을 좀 크게 하고 감정을 충분히 표현해달라는 부탁 외에 다른 디렉션을 하지 않았다. 이에 소리꾼들은 김 사진가 앞에서 어릴적 추억이나 가정환경, 성장과정 등 다양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노래했다. 그 모습에 담긴 소리꾼들의 감정을 사진에 담아내기 위해 노래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아웃포커싱, 패닝, 흔들며 찍기 등 다양한 기법을 총동원해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었다.
김 사진가는 “촬영 후 나온 사진을 보고 매우 감동적이었다. 연출가에게도 사진을 모두 써 달라고 했다”며 “소리꾼들이 감정에 충실했던 덕분에 나도 노래에 흠뻑 빠졌다. 그들이 흥에 겨우면 흥이 났고, 눈물을 흘리면 함께 눈물이 났다”고 돌아봤다.
“예산 문제로 헤어·메이크업·코디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소리꾼들에겐 감정이 담긴 노래가 최고의 무기였고, 그들의 모습에 진짜 감동을 느꼈어요. 공연의 주인공은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출연자들인데, 그들을 사진으로 잘 표현했다는 자부심이 생겼어요.”
한편 김 사진가는 이번 공연 외에도 다양한 작업물을 내놓는다. 고(故) 이어령 선생의 타계 전 1년간 촬영한 작품을 모은 사진전 ‘목전심후 ? 모던보이와 함께한 오후들’도 14일까지 진행 중이다. 평소 1세대 예술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던 차에 이어령 선생이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고, 말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 어렵게 승낙을 받았다고 그는 돌아봤다. ‘신여성’ 시리즈, 현대카드·현대차 광고사진 등 40여년 활동하며 남긴 주요 작품들을 하나로 모은 책 ‘포토 랭귀지’도 조만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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