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코로나19로 인한 '학력 격차’가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돌봄 격차'에서 비롯됩니다. 한 아이를 중심에 둔 맞춤형 통합 지원체제가 시급합니다.”
한희정(47) 실천교육교사모임(실천교사) 회장은 지난 3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에서 서울경제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제대로 된 돌봄 없이는 학력이 좋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한 회장은 2019~2020년 서울모임 회장을 거쳐 지난해 1월부터는 전국 모임의 3대 회장으로 선출돼 1년 반째 실천교육교사모임을 이끌고 있다. 임기 내내 코로나19를 겪은 그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교육 문제는 ‘돌봄 격차'다. 한 회장은 “우리 사회는 예전부터 ‘격차 사회’였고 이에 따라 학력 격차도 늘 존재했다"며 “코로나19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의 격차를 해결해줄 수는 없으나 아동의 기본권으로 보장돼 있는 돌봄의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양대 교원단체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다. 역사로 보나 규모로 보나 그렇다. 이에 비해 실천교사는 불과 6년 전인 2016년 창립됐다. 하지만 젊음과 자유로움, 수평적인 분위기 등을 무기로 교육 현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반응하고 피부에 와닿는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교육 현장에서 빠른 속도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한 회장은 “실천교사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원단체가 필요하다는 고민 끝에 탄생했다”며 “교실과 현장에서 아이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 교사들이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교원단체가 되려한다"고 했다. 이어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의 교원단체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 회장과 실천교사가 나아갈 방향과 다양한 교육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한 회장과의 일문일답.
-회장을 맡은 지 1년 반이 지났다.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아쉬운 점은.
"임기 내내 코로나19 상황이었다. 지난 정부에서는 형식적으로나마 교원단체들과의 소통 창구를 열어놓아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온라인 수업을 시행할 때 학교의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현장 밀착형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했다. 가령 온라인클래스 등 교육부가 학교의 현장을 모른 채 프로그램을 개발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피드백 하면서 정상화되는 데 기여했다. 우리가 교사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서인데 아이들의 성장 발달을 지원해 주기 위한 시스템들이 아닌 것들이 너무 많았다. 또 평소 공문 등 형식상 업무에 치우쳐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19 시기에는 이런 상황이 이어져선 절대 안 됐었기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업들을 줄여달라는 요구를 하거나 방역 지침을 현실화 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한편으론 선생님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했어야 했는데 매일 줌으로 회의를 진행하면서 직접적인 만남이나 소통이 부족했던 게 아쉽다. 이제 방역 지침도 완화되고 코로나19도 정리가 되는 과정인 만큼 지역 모임에 찾아가서 뵙고 선생님들 이야기도 듣고 싶다."
-현재 실천교사가 추진 중이거나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지금 저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돌봄의 격차’다. 돌봄이 제대로 안 되는데 학력이 좋을 수는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격차는 존재했고 코로나19가 그것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동의 기본권으로 보장돼 있는 돌봄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실천교사는 코로나19 시기를 보낸 각급 학교의 상황, 대도시와 읍면 지역 아이들이 겪었던 경험의 차이를 책으로 정리하고 있다. 전면 등교를 하고 보니 학교·지역에 따라 아이들이 성장과 발달에 어려움을 겪은 정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등교할 때와는 또 달랐다. 코로나19 이후의 교육을 위한 고민을 담고 실천교사만의 의제도 던질 예정이다.
또 코로나19를 겪으며 학교에 어마어마한 숫자들의 기기들이 들어왔는데, 다시 오프라인 수업 중심이 된다면 그 기기들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전국 곳곳의 디지털 기기 보급 사업 등을 조사하고 이러한 것들이 정말 교육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할지 고민 중이다."
-돌봄 격차 해소를 위한 방법이 있다면.
"아이들의 문제가 대부분 돌봄 격차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칸막이 행정’이 사라져야 한다. 위(Wee)클래스가 하는 일이 다르고, 지역사회교육전문가가 하는 일이 다르고, 학교 안에서도 학교폭력 담당, 무슨 담당으로 다 나뉜다. 또 학교대로 하는 것도 있고, 교육청대로 하는 것도 있고 지자체대로 하는 게 또 있다. 그런데 그러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아이는 한 명이다. 아이 한 명에 대해 쪼개기식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아이한테 소요되는 예산을 통합해서 주면 훨씬 더 의미 있을 텐데, 부서별 성과 경쟁을 하다 보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한 아이를 중심에 둔 맞춤형 통합 지원체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원이 필요한 아이가 있으면 담당자가 붙어 수많은 사업들 가운데 해당 아이에게 맞는 사업을 연결하는 식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맹점이 있다. 교사가 아무리 이 아이가 안타까워서 지원해주고 싶다고 해도 보호자 동의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보호자 동의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우리 교육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학교 현장을 와보지 않은 전문가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떠난 지 2~3년만 지나도 현장이 바뀐다. 아이들이 바뀌고 부모 세대도 바뀌고 교사 세대도 바뀐다. 근데 본인들은 10년, 20년 전 학교 경험을 근거로 이런저런 훈수를 둔다. 절대 도움되지 않는다. 학교 현장에 와보지 않은 교육학 전공 교수들, 학교의 교육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분들이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주의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은 자기 주변 사람이 다 자기 수준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료들은 본인 자녀의 경험이나 본인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한다. 적어도 중산층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는 그런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이야기로 시끄럽다.
"교부금이 내국세에 연동돼 있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선 좀 따져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생 수가 줄어든다고 그 예산을 빼서 고등교육에 넣어야 된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건 정말 답답하다. 유초중등 교육은 보편교육이다. 고등교육은 어쨌든 선별된 아이들이 들어간 것인데 이를 1인당 교육비로 치환해서 설명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유초중등 교육에서도 부족한 게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현장 학습 비용, 방과 후 교육활동 비용 모두 수익자 부담이다. 수익자 부담 경비로 나가는 건 사교육비 통계에도 안 들어간다. 진짜 공교육 안에서 방과 후를 끌어안고 갈 거면 무상화 할 필요가 있다. 교부금이 과잉이어서 교육감들이 ‘돈 잔치’한다는 주장을 하려면 어떤 부분이 돈 잔치인지를 팩트체크를 했으면 좋겠다. 디지털 시대에 아이들은 동일한 기기가 있어야 학교 수업이 된다. 그런데 기기를 지원해줬다고 선심성 포퓰리즘으로 봐야하는가 싶다. 또 여름에는 운동장 수업이 힘들어 체육관을 써야 하는데, 정작 체육관은 하나밖에 없어 모든 학급이 마음껏 쓰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제대로 된 신체 활동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학교 시설이 가정보다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지금 우리 학교 시설이 과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을 따라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교육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어떤 변화를 예상하며 새 정부에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자율형사립고 부활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고교 체제 다양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다양화인가 고민해야 한다. 일반고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자사고의 교육의 질이 높다고 할 때, 실제 수업의 양태 때문인지 학생들에 대한 선발 효과 때문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또 고교 체제 다양화가 우리 사회를 다양화하는 데 기여할 것인지도 봐야 한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어렵고 소외된 계층들을 배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미 2010년도부터 엄청난 문제들을 확인 해왔는데 이를 존속시키는 것이 맞나싶다. 이명박 정부에서 다양한 실험들을 했지만 별 의미는 없이 끝났다.
또 고등교육 대상자들도 줄고 중국인 등 유학생으로 채우고 있는 대학도 많다. 무분별한 사학들이 난립하고 줄이지도 못하면서 초중등교육 예산이 남으니 달라고 하는 건 굉장히 무책임한 발언이다. 교육부 장관 내정자가 행정 전문가라 우려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행정 혁신을 제대로 해서 새는 돈을 좀 줄이고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 체제를 만드는 데 노력했으면 좋겠다."
-최근 교육감 선거가 치러졌다. 교육감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진보만이 옳은 것도 아니고 또 보수만이 옳은 것도 아니다. 적어도 교육자라는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합의를 이끌어가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조차 입장이 갈리는 만큼 쉽지 않은 문제다. 보수와 진보 교육감이 이제 반반 정도 되는 상황인데, 그러니 더더욱 제발 편 나누지 말고 데이터에 근거한 고민을 진솔하게 나누고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가령 9시 등교가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한 발달을 위해서 필요한가 아닌가를 알기 위해선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의를 해야 되는데, 그저 9시 등교는 전임 교육감인 진보 교육감들이 트레이드 마크이니 폐지하자는 식으로 가고 있는 게 너무 안타깝다. 진영 논리보다는 우리 미래 세대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해 주셨으면 좋겠다."
-교원단체로서 교사들에게 필요한 점을 말하자면.
"교원단체 다양화를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다. 법적으로 인정받은 교원 단체가 유일하게 교총 하나밖에 없다.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독점 체제인 것이다. 하루 빨리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모아 전할 수 있는 교원단체들이 더 설립될 수 있게 시행령을 만들어 달라. 초안은 이미 교육부 손 안에 있다.
또 한 가지는 과거에는 교사들이 ‘선생이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며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는데, 현재 2030 교사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굉장히 다양한 여러 가지 중에서 교직을 선택하고 수업을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지 못해 이직하려는 의사도 높다는 점이다. 육아 시간제도 등 이들의 어려움을 덜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999년부터 교직 생활을 하며 많은 것들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학교를 구성하는 직종들이 아주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직종들이 모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가라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급식을 실시하게 되고, 방과후 수업을 하게 되고, 돌봄 교실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직종들이 학교에 들어왔고, 이것이 이제 너무나 당연한 학교의 기능처럼 자리잡았다. 과거 학교는 그냥 공부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학교에 와서 관계도 맺어야 하고 또 부모님의 직업활동 시간 동안 돌봄도 받아야 하고, 또 다양한 특기 적성과 관련된 활동들도 지원해줘야 되는 곳이 됐다.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 교사는 수업을 하고 돌봄 강사는 돌봄을 하는 건가, 교사는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수업만 할 수 있는가, 돌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돌봄이라는 것이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일정 시간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만이 돌봄인가,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는 과정들 속에 돌봄의 진짜 의미를 찾아야 되는 거 아닌가 등의 고민들이 많이 한다.
돌봄 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하자라고 하면 불안해서 거기는 못 맡기니까 학교에 맡겨 달라고 하면서도, 정작 학교 선생님들은 맨날 놀고 가르치지도 않고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불신한다. 이제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하면 좋겠다. 프랑스는 점심시간에 교사들이 아이들을 지도하지 않는다. 지자체 사람들이 한다. 우리는 모두 담임 교사 책임이다. 옛날에 ‘교사니까 해야지' 하면서 떠맡아 왔던 것들이 지금은 큰 짐이 돼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있는 한 교사의 책임이 계속 남게 되니까 그에 맞게 교사를 인정해 줘야 한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일은 우리가 다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 교사들의 효능감이 떨어진다. 학교가 굉장히 과중한 것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이에 맞는 정책들을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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