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반도체 세정 장비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국내 업체 및 관계자들이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해당 기술이 적용된 장비가 수출된 기업은 중국 국영기업의 핵심 자회사로 확인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방문, ‘반도체 굴기’의 중요성을 설파해 주목받았던 곳이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산업 기술을 유출한 중대 범죄”라고 판단한 가운데 국내 업체 측은 “기술을 넘긴 사실이 없다”고 맞서고 있어 재판 과정에서 첨예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7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세메스 기술 유출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세메스 전 직원 A씨 등이 설립한 B사는 2020년 8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반도체 세정 장비 14대를 중국 국영 반도체 연구소인 C사 등에 판매해 710억 원 상당의 수익을 올렸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 소재의 C사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시찰할 정도로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첨병 역할을 했던 최대 국영 반도체 기업 D사는 2016년 C사를 인수했다.
세메스는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에 반도체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회사다. 일본 도쿄일렉트론(TEL)·다이닛폰스크린(DNS)과 함께 세계 3대 반도체 세정 장비 제조 업체로 알려져 있다. 세메스에서 구매 담당, 협력사 관리 등을 담당했던 A씨는 회사를 퇴직한 뒤 2019년 3월 B사를 설립하고, 그 전후로 세메스 전·현직 연구원들을 영입했다. 이들은 세메스에서의 경험을 살려 각자 업무를 분담한 뒤 반도체 세정장비 개발에 나섰다.
검찰 조사 결과 A씨 등은 친분 있는 세메스 및 협력 업체 직원들에게 관련 기술 자료를 넘겨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 보안 시스템 적발을 피하기 위해 △소지 중인 휴대폰에 메모 △현직 직원을 포섭해 노트북 반출 △무관한 파일명으로 바꿔 e메일 전송하기 등의 수법을 동원했다. B사는 세정 장비 제작에 필요한 설계 도면, 부품 리스트, 약액배관 정보, 소프트웨어, 작업표준서 등 대부분의 기술을 빼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B사가 중국 현지 장비업체인 즈춘커지(PNC)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세정 장비 기술 일부를 이전하고, 중국 국영 반도체 연구소인 ‘상하이 집적회로 혁신센터(ICRD)’에 세정 장비를 납품하는 등의 대가로 합작법인 지분 20%와 2000억 원 상당의 납품 계약을 따냈다고 보고 있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이춘 부장검사)가 지난달 25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영업 비밀 국외 누설 등 혐의로 기소한 A씨와 B사 등의 향후 재판 쟁점은 세메스의 기술이 실제로 중국 업체에 넘어갔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A씨 등은 세메스의 영업 비밀과 산업 기술이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부정한 이익을 목적으로 이를 사용했다”고 봤다. 반면 피고인 측은 “장비를 중국으로 수출했지만 세메스의 영업 비밀 자료들을 거래 업체에 제공한 적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B사 측은 “중국의 합작법인은 셋업, 유지 보수 등의 원활한 지원을 위해 설립된 것”이라며 “중국에 진출하는 많은 국내 기업들이 원활한 사업을 위해 중국 내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세메스의 영업 비밀 유출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세메스의 핵심 자산인 ‘초임계 세정 장비’는 제조 기술은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게 B사 측의 입장이다. 초임계 세정 장비는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삼성전자에만 납품해온 핵심 자산이다. B사 측은 “초임계 세정 장비를 수출하거나 개발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개발할 계획이 없다”며 “향후 진행될 재판에서도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재판 절차에 적극 협조할 예정이며, 재판 과정에서 정확한 사실관계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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