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생 1명이 연간 부담하는 등록금은 평균 676만 3000원이다. 10년 전인 2012학년도의 671만 4000원에 비해 4만 9000원(0.7%) 늘었다. 최근 10년간 연간 평균 물가상승률이 1.3%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인상률이다. 서울 주요 사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3000만 원 안팎이고 지역 거점 국립대도 2000만 원가량이다. 등록금이 14년째 동결돼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학생들이 낸 돈의 3~5배에 이르는 금액을 교육에 투입하다 보니 대학의 재정난은 날로 심화하고 교육의 질은 악화일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계가 요구하는 ‘첨단산업 인재 육성’은 언감생심이고 당장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서울경제가 교육 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 개혁 설문조사’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야 할 시급한 교육 개혁 과제로 ‘고등교육 투자 확대’가 꼽힌 것도 국내 대학이 처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전문가들은 대학이 기술·산업 변화에 발맞춰 양질의 인재를 안정적이고 탄력적으로 길러낼 수 있도록 재정 지원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자율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첨단산업 인재 양성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규제 완화 시급=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에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이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 2024년 대학 입학 자원은 37만 3470명으로 입학 정원 47만 3100명에 비해 10만 명가량 부족하다. 2040년 대학 신입생 충원율은 현재의 68.9%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미충원 대학의 대부분은 지방 사립대에 집중되고 일부 수도권 대학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충원 문제 해결을 위해 정원 감축이 필요하지만 이는 곧 대학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 대학들이 등록금 자율화와 함께 국가장학금 확충 등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이유다.
대학들이 정부 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선진국에 비해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투자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2018년 기준 1만 1290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만 7065달러의 66.1%에 불과하다. 초·중등 교육 부문과의 불균형도 심하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1인당 공교육비(1만 2535달러)는 OECD 평균(9550달러)의 131% 수준이며 중·고등학생(1만 4978달러)은 OECD 평균(1만 1192달러)의 134% 수준이다. 올해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은 12조 원 규모로 유·초·중등 교육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81조 원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유·초·중·고교생(596만 명)이 대학생(320만 명)에 비해 2배가량 많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불균형적이다.
대학들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안정적인 고등교육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고등교육 재원 확보 방안은 국세 교육세를 고등교육세로 개편하거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일부를 고등교육 재정으로 이전해 내국세 일정 비율과 특별교부금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선은 지방자치단체와 시도 교육청 및 교육계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지만 학령인구 감소세에 비해 비대하게 늘어난 만큼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지방대 교수 월급이 고등학교 교사 월급보다 적을 정도로 대학 재정난이 심각하다”면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고등교육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국가의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국립대에서 사립대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자율 확대로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 이끌어 내야=전문가들은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 확대가 규제 완화, 자율성 확대와 함께 이뤄져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원, 등록금, 수익 사업 관련 규제를 풀고 자율을 확대해 대학들이 스스로 재정 확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학과 통폐합 등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강화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장(한양대 석좌교수)은 “40년 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해 대학 정원을 늘려서라도 반도체·2차전지·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분야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라면서도 “대학이 교수·학생·동문들의 반발을 극복하고 자체적으로 정원을 조정하려면 정원 감소로 수업시수가 줄어든 교수의 경우 외부 기업, 연구소 활동을 통해 수입을 보전할 수 있도록 겸직 제한을 풀어주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을 확대하되 정원을 자율적으로 조정하고 학과 통폐합을 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이끌어낼 필요도 있다. 김도연 울산대 이사장은 “수도권 대학에 정원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대학들이 ‘학과 간 칸막이’ 때문에 정원 조정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학과 통폐합을 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책무성을 높이고 혁신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은 반도체와 2차전지·디스플레이·인공지능·빅데이터 등이 첨단산업으로 꼽히지만 20~30년 후의 기술 변화와 산업구조 등을 내다보고 인재 양성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국내 대학들이 학과라는 틀 안에서 2~4년제 형태로 경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6개월 짜리 나노학위와 학점당 학위제인 마이크로학위 등 다양한 학제를 통해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시대”라면서 “첨단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정원 확대가 수도권 쏠림 현상 심화와 지방 소멸 가속화라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대학의 인재 양성 시스템을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전환하는 혁신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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