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내조’를 기조로 내세웠던 김건희 여사가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김 여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공개적으로 참배하거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동물권’ 보호를 주장하면서다. 여당 내에선 기왕 김 여사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면 이를 전담할 공식 조직이 신설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13일 김 여사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이 동행하고 부속실이 일정을 지원하는 공식 일정이었다. 대통령실은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혔던 김 여사가 인사 차원에서 권 여사를 찾아 뵙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은 정장과 흰색 셔츠 차림으로 나타난 김 여사는 자신을 기다리던 30여 명의 지지자들에게 수차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참배 후 권 여사 측 조호연 비서실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권 여사 사저로 이동했다. 차성수 노무현재단 이사와도 짧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권 여사는 사저 현관 문 앞까지 나와 김 여사를 웃으며 맞이했다. 오후 3시께 시작된 환담은 오후 4시30분에 종료됐다. 김 여사는 예정엔 없었지만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도 방문했다. 체험관은 시범운영을 거쳐 올 8월 노 전 대통령 기념관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김 여사는 환담 자리에서 권 여사에게 윤 대통령이 과거 영화 ‘변호인’을 보며 눈물을 흘린 기억을 전했다. 김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너(윤 대통령)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어라'라고 말해 주셨을 것 같다”며 “국민통합을 강조하신 노 전 대통령을 모두가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에 권 여사는 “몸이 불편해서 (윤 대통령) 취임식에 가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정상의 자리는 평가받고 채찍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참으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여사는 김“먼 길을 찾아와줘 고맙다”며 “영부인으로서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하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달라”고도 말했다.
김 여사는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윤옥 여사와도 서울의 한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했다. 또 문재인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정숙 여사 예방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金, 지난해 12월 “아내 역할 충실하겠다”
지금은 개 식용 등 사회 현안에 목소리
지금은 개 식용 등 사회 현안에 목소리
김건희 여사는 ‘동물권 보호’라는 사회 현안에도 목소리를 냈다. 김 여사는 이날 공개된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경제 규모가 있는 나라 중 개를 먹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라고 개 식용 종식을 주장했다.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은 반려묘 3마리와 반려견 4마리를 키우고 있는 동물 애호가로 유명하다. 김 여사는 동물 유기·학대 문제에 대해서도 “동물병원 진료비가 표준화돼면 이런 실태가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며 “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명이다. 학대범 처벌 수위를 강화해 질서가 잡히면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동물 학대와 가정폭력은 같은 줄기에서 나온 다른 가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앞서 대선 기간 학력·경력 부풀리기 논란과 주가조작 의혹 등에 휘말린 뒤 언론 노출을 최대한 자제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김 여사는 지난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말한 뒤 활동을 자제했다. 일각에선 김 여사가 문화 예술, 동물권 등 자신의 전문 분야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대통령 배우자상을 굳히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제 2부속실 폐지’ 공약에 따라 김 여사를 전담하는 조직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현재 부속실에서는 2~3명 가량이 기존 업무를 수행하다가 필요할 때만 김 여사 일정 지원에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김 여사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이 온라인 팬클럽을 통해 유출되는 등 보안 사고가 잇따르며 김 여사 전담 지원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MBC) 방송에서 “저는 그런 소통이라는 것이 오히려 차라리 공적인 조직을 통해서 하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물론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나 이런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영부인의 행보라는 것이 때로는 김정숙 여사 때도 그렇고, 독립적인 행보를 통해서 국격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이런 지점도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는 이런 거야말로 오히려 공적인 영역에서 관리돼야 하는 것 아닌가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金, 조용한 내조 중…전담 조직 논의된 바 없어”
하지만 대통령실은 지원 조직 신설 여부에 ‘제 2부속실 폐지’ 번복 비판을 의식한 듯 “논의되고 있는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용산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최근 김 여사의 행보가 앞서 이야기해온 ‘조용한 내조’의 범주를 벗어나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직 대통령 부인을 한번 뵙고 인사하는 건 ‘조용한 내조’에 해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여사의 동물권 관련 인터뷰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손길이 닿지 않는 먼 곳, 그런 곳을 살피겠다는 의미에서 인터뷰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순방에 동행할 가능성에 관해서는 “아직은 말씀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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