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실종시대입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고(高) 위기에 민생 경제는 뿌리채 흔들리고 있지만 정치권은 해법을 내놓기는 커녕 ‘수박’ ‘민들레’에 허우적 거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국회는 원구성도 하지 못한 채 교육부·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무산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선·지선을 내리 패배한 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갈등이 악화일로에 있고,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측근들(윤핵관)의 영향력 확대와 이를 견제하려는 경쟁그룹 간 다툼이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민생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여야 ‘서로 네탓’이라며 쌍심지를 켜고 있지만 계파 마다 눈길은 이미 2024년 총선을 향해있습니다.
與, 신·구세력 힘겨루기·野, 2연패 리더십 진공…리더십 부재 빠진 與·野
윤 대통령이 당선된 뒤 국민의힘은 선거기간 봉합 된 듯 보였던 ‘윤핵관’과 이준석 대표간 앙금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내부 공부모임으로 추진하려던 ‘민심들어볼레(민들레)’가 윤핵관 계파 모임이 될 것이라는 당내 반발과 혁신위가 이 대표의 사조직이라는 비판이 오고 간 것은 결국 신·구세력 간 힘겨루기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힘겨루기의 속사정은 결국 2022년 총선의 ‘공천권’입니다. 실제 이준석 대표는 지난 12일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본인들(윤핵관)사고의 틀로 보면, 저 자식(이준석)이 공천을 독점하려고 또 수를 쓰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 그대로, 머리 속에 공천권 밖에 없는 사람은 항상 공천권 생각밖에 안드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조직이라는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지만 이 대표 측근들은 공천이 곧 혁신이라며 ‘전쟁’을 불사하는 청년 공천을 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습니다. 결국 당내 공천 공포감이 팽배한 것은 사실입니다.
통상 대선에서 승리한 여당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인데요. 집권 초 대통령 영향력과 높은 지지율이 계파 갈등을 희석시켰기 때문입니다. 반면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입당 1년도 안돼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갈등을 제압할 수준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계파간 갈등이 집권 초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2연패를 당한 민주당은 더욱 심각한 형편입니다. 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당이 리더십 진공 상태에 빠지자 이재명 의원이 당권을 쥐고 혁신공천을 해야 한다는 친명계와 선거 패배의 원인이 이 의원에게 있다며 반발하는 반명계가 ‘수박’논쟁까지 꺼내 반목은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15일 민주당 진보싱크탱크인 더좋은미래(더미래)는 대선·지방선거 패배에 ‘이재명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했습니다. 발제를 맡은 김기식 소장은 “국민의힘은 5년 뒤 40대 초반 이준석 대표, 50대 초반 한동훈 법무장관, 거기에 오세훈 시장과 안철수 의원까지 4명이 경쟁할 것"이라며 "우리도 이회창과 한나라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다양한 리더십이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 한명 만 4년 내내 끌고가 다음 대선을 치른다면 과거 제왕적 총재로 군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재명 의원의 당대표 출마는 곧 이회창의 길이라고 직격을 한 것입니다.
역대급 ‘여소야대’…계속되는 정계개편 유혹
여소야대 상황도 계파 정치를 촉매시키고 있습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계 개편에 대한 유혹은 계속 있을 것”이라며 “야당의 당권 투쟁으로 분열 양상이 커질 경우 일정 정도는 여당에 협력하는 정당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이 과정에서 계파는 집단행동에 탄력을 높이는 동시에 당대당 통합 등에 지분을 챙길 수 있는 핵심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2008년 한나라당(국민의힘)에서 ‘공천학살’을 당한 친박계 일부 의원들이 ‘친박연대’를 꾸려 탈당한 뒤에 당대당 통합 지분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습니다.
4년 뒤 2012년 총선에선 친박계가 공천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고문은 기자회견을 통해 “감정적, 보복적 공천을 하지 마라”며 날을 세웠지만 2016년엔 이른바 ‘옥새파동’까지 겹치며 친이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기간 공천에서 배제됐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2017년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선 친이계 중심으로 바른미래당이 창당됐습니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 속에 탈당과 복당 등 이합집산의 힘이 계파였습니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에선 공천 갈등에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당을 창당 ‘녹색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계파의 뒷심 덕분이었습니다.
‘공천’ 좌우하는 계파…생존을 위한 ‘경쟁’
결국 계파 간 당권 경쟁은 총선 공천이라는 의원들의 생존권과 직결돼 있습니다. 당권을 장악해야 총선에서 ‘자기사람’을 공천할 수 있고, 정계개편 역시 공천 칼날에 흩어지고 모이며 선거구도를 바꿔 생존을 모색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셈입니다.
‘계파=당권=공천’ 등식의 성립이 허약한 정당구조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서구에도 계파가 존재하지만 온건, 자유, 보수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와 견제 등을 이어간다”며 “인물중심의 명사정당으로 명맥을 이어온 한국정당구조의 태생적 한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한국 정당에서 계파는 1955년 이승만 정권이 사사오입 개헌으로 반발해 출범한 민주당 창당과정에서 시작했습니다. 신익희와 조병옥이 이끄는 민국당을 중심으로 장면, 정일형 등 흥사단계, 현석호와 김영삼 등 원내 자유당계 등이 참여해 구파를 형성했고, 장면과 대한부인회 박순천이 중심이 돼 신파가 형성되면서 주요 당직을 철저하게 5대5로 안배했습니다.
구파와 신파는 60년 5대 총선에서 당선자 대회까지 별도로 개최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었습니다. 이후 신파는 동교동계(DJ)와 친노, 친문에 이어 현재 친명까지도 사람을 중심으로 계파가 형성됐습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 구파를 이은 상도동계(YS)를 이어 친이, 친박, 윤핵관까지 인물 중심 계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중심으로 계파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지만 지향점과 가치가 없는 계파는 결국 공천이라는 이익을 위해 모인 이익집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정당에 구조화 돼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선과 지선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2년 뒤 총선을 두고 계파 갈등을 하냐는 지적도 생존권 앞에 무력한 형편입니다. ‘민심 위에 계파, 계파 위에 공천’의 현실입니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윤핵관과 이준석 대표간의 신·구 세력 다툼에서 누가 살아남을까요. 민주당은 결국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전당대회를 마치게 될까요. 윤 실장의 지적처럼 가치연대 없는 이익집단으로 계파간 이해 득실만 따져 공천을 했을 때 국민들은 단호하게 심판했습니다. 공천만 바라보며 계파 경쟁을 하기 전에 무서운 민심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3고’로 시작되는 복합위기는 이미 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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