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삶을 산다는 건 문 없는 방에 갇힌 것과 같다. 자유의지가 꺾인 채 평생 휠체어를 탔야 했던 딸이 문을 열고 세상에 나가기 위해 엄마를 살해했다. 그리고, 현재 수감 중인 딸은 출소 후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서서히 침몰하는 배처럼 어그러지는 모녀 관계를 세심하게 그리는 '디 액트'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다.
왓챠에 공개된 미국 드라마 '디 액트'는 평생 휠체어 앉아 튜브로 음식을 먹었던 집시(조이 킹)가 모든 게 엄마 디디(패트리샤 아퀘트)의 과잉보호임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걸을 수 있음에도 휠체어를 타고, 먹을 수 있음에도 위에 튜브를 꽂아 먹었던 집시. 이는 장애 아동 지원금과 후원금을 얻고, 딸을 자신의 손아귀에 완전히 쥐려는 엄마의 계획 때문이었다. 친구도 없이 엄마와 외로이 살던 집시는 점점 외모와 이성 친구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인터넷을 통해 닉(캘럼 워시)을 만나게 된다. 닉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라던 집시는 절대 엄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하고, 결국 엄마를 죽일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제목인 '디 액트(THE ACT)'에는 작품을 둘로 나누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첫 번째는 극 초반에 그려지는, 후원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연기'해야 했던 집시와 디디의 모습이다. 걸을 수 있는 딸을 휠체어에 앉히고, 백혈병에 걸렸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 삭발을 시키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디디는 자신의 거짓말에 갇혀 실제로 집시가 아프다고 여길 정도. 엄마에게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집시의 모습이 두 번째 의미다. 평생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됐던 집시가 점차 자신의 의지를 갖고 삶을 꾸려나가려고 한다.
집시는 묘한 캐릭터다. 20살이 넘어서까지 집 안에서 엄마와 생활하며 그야말로 아기처럼 길러졌기 때문에 보통의 캐릭터와 차이를 보인다. 사회성은 다소 결여됐지만 순수하기 그지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해한 것과 차단된 채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디즈니, 인형 등에 둘러싸여 살면서 형성된 성격이다. 그는 과도하게 밝고, 항상 잇몸이 보일 정도로 커다란 미소를 짓고 있으며 마치 디즈니 성우들이 낼 법한 목소리로 말한다. 또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우호적일 거라는 동화 같은 믿음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현실이 곧 디즈니 만화 속과 같다고 믿는 집시. 왕자님이 나타나 계모를 물리치고 자신을 탈출시켜 주길 바란다. 실제로도 닉이 디디를 살해하고 집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으니 그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디즈니에서는 왕자가 공주를 구하고 함께하게 된 이후의 삶은 다루지 않는다. 집시의 상상 속에서 이들은 평생 행복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지 않나. 닉과 함께하게 된 집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닉에 화가 나기만 한다. 또 닉의 집이 자신의 집과 다르게 청결하지 못해 실망하기도 한다. "진짜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울부짖을 정도다.
지나치게 순수한 탓인지 집시는 도덕적으로 결여돼 있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엄마를 종용해 훔치게 만들고, 자신이 직접 훔치기도 한다. 정말로 필요한 게 있어서 가져간 거라고 순수하게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건을 훔친 집시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부분도 그렇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걸어나가면 끝날 일이지만, 여러 번 의지가 꺾인 집시는 단숨에 엄마를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촘촘하게 짜인 연출은 작품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집시의 심경 변화가 은유적으로 화면에 표현되는데, 이때 소품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집시가 엄마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쇼핑몰에서는 뒤편의 빨간 페인트가 피처럼 흐르며 죽음을 암시한다. 집시가 엄마에게 붉은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날, 엄마가 사망한 것도 상징성을 지닌다.
이 모든 이야기는 충격적이게도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2015년 6월 미국 미주리 주에서 일어난 블랜차드 모녀 살인사건이 모티브다. 현재 닉은 1급 살인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집시는 2급 살인 혐의로 10년 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 집시는 새로운 연인을 만나 출소 이후 가정을 꾸릴 꿈을 꾸고 있다는 후문이다.
◆시식평 - 삭발 열연을 펼친 조이 킹의 세심한 표정 변화, 모르고 지나치기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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