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서울재즈쿼텟이 20여 년 만에 재결성해서 좋은 공연을 했습니다. 와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공연할 수 있게 자리를 내 주신 남무성 작가에게도 감사합니다.”
1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재즈 카페 가우초. ‘한국의 케니 지’로 불리는 국내 대표 색소포니스트 이정식(62)은 2시간 남짓의 공연을 마무리하며 감격에 젖은 듯 이렇게 말했다. 오랜 음악 생활을 하는 동안 숱한 공연과 음반 녹음을 소화했던 그에게 이날의 무대는 조촐한 공연이었지만 의미가 남달랐다. 1990년대 초·중반을 함께했던 ‘서울재즈쿼텟’의 원년 멤버들이 다시 모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정식을 비롯해 드러머 김희현(72), 베이시스트 장응규(69), 피아니스트 양준호(59) 등 1990년대 ‘서울재즈쿼텟’을 만들었던 멤버들은 이날 가우초에서 재결성을 알리는 공연을 열었다. ‘서울재즈쿼텟’은 당시 퓨전 재즈, 팝 재즈 등 현대적 레퍼토리와 화려한 연주력으로 단기간에 한국 재즈의 중심에 자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론트맨 역할을 하는 이정식 외 다른 멤버들도 모두 상당한 연주력과 경력의 소유자다. 김희현은 1970년대 미8군 재즈 클럽에서부터 연주를 시작했으며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합류할 수 없다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이다. 장응규는 국내 뮤지션 최초로 재즈 베이스 교본을 만든 베이시스트로, 많은 음악학도가 이 책으로 베이스를 공부했다. 작곡을 공부한 양준호는 1980년대부터 한국 모던 재즈의 선구자로 이름을 날린 피아니스트로 ‘한국의 빌 에번스(미국 유명 재즈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이들은 ‘필 라이크 메이킹 러브’와 ‘베사메 무초’ 등 재즈·스윙 넘버는 물론 ‘우리의 소원’ ‘뱃놀이’ 등을 재즈로 변주한 버전 등 다양한 곡을 들려줬다. 이들이 함께 연주한 것은 약 26년 만이었고 공연 당일 리허설에서야 제대로 합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화려하면서도 정확한 연주와 팀워크로 색소폰·피아노·베이스·드럼 모두 솔로 연주를 능숙하게 주고받았고 공연장을 금세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가우초의 사장으로 공연을 주선했던 남 작가는 “제가 대학생이던 1990년대 초반 DJ 아르바이트를 하던 방배동 재즈 클럽 ‘파블로’에서 서울재즈쿼텟이 주 1회 정기 공연을 했다”며 “그렇게 인연을 이어오다가 이정식이 모처럼 추억을 소환했다”고 전했다.
네 사람이 서울재즈쿼텟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공연을 한 건 1990년대 초반부터 1996년까지다. 그러나 그 전부터 밴드 이름만 정하지 않았을 뿐 자주 모여서 공연을 했다. 1980년대 우연히 모여 놀듯이 합주한 게 시작이었고 이들은 KBS 악단 연습실에 몰래 들어가 연습하면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했다. 이정식은 “1960~1970년대는 미군을 중심으로 재즈가 성행한 덕에 미8군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는 좋은 시절이 있었지만 1980년대는 한국 재즈 불모지였다”고 돌아봤다. 이날 공연에는 네 사람이 1980년대 자리 잡는 데 많은 도움을 줬던 1세대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83)도 깜짝 손님으로 참석해 ‘서머 타임’ 등 2곡을 부르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60~70대를 바라보며 재결성한 서울재즈쿼텟은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낼 생각이 없다. 8월에는 좀 더 큰 공연장에서 정식으로 공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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