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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앞에 앉는 사람'을 응원한다

성행경 사회부 차장





존 헤네시 구글 알파벳 이사회 의장은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스탠퍼드대 총장을 지냈다. 스탠퍼드대는 20세기에도 이미 충분히 좋은 대학이었으나 ‘실리콘밸리의 대부’라고 불리는 헤네시 총장이 재임하는 동안 초일류 대학으로 발돋움했다. 그는 컴퓨터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는 튜링상을 수상한 석학이자 팹리스 반도체 설계회사를 창업해 4억 달러에 매각한 기업가였다. 공대 학장 시절 대학원생이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창업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총장으로 재직한 16년 동안 미국 대학 모금 역사상 최대인 62억 달러(8조 원)를 모아 스탠퍼드대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헤네시 총장처럼 미국에는 장기간 재임하는 총장들이 많다. 131년의 역사를 지닌 스탠퍼드대 총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13년이다. 하버드대 총장은 평균 14년 재임했다. 로런스 배카우 현 하버드대 총장은 29대다. 오세정 현 서울대 총장은 27대다. 하버드대는 1636년, 서울대는 1946년에 개교했다. 역사가 거의 300년 차이가 나는데 역대 총장 숫자는 비슷하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대학총장 통계’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교 총장의 재직 횟수는 1회(신임)가 73.1%로 가장 많았다. 2회(연임)는 12.6%, 3회 이상은 14.3%였다. 2회나 3회 이상 재직하는 총장은 대부분 사립대의 설립자이거나 가족이다. 특히 국·공립대는 97.3%가 신임 총장이다. 대학 총장을 16년이나 할 만큼 유능했던 헤네시 총장도 국내 대학에서는 4년 단임으로 끝났을 것이다.



국내 대학도 제도적으로는 총장 연임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4년 단임제다. 총장하겠다는 교수들이 줄서 있기 때문이다. 총장 직선제를 실시하는 대학은 더욱 그렇다. 총장 선출과 관련해 교수 간 갈등과 반목도 심하다. 한 교육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총장 임기가 2~3년 지나면 규모가 큰 대학은 총장되겠다는 사람이 10명 정도 나온다. 그 10명이 가장 먼저 떨어뜨려야 하는 사람이 현직 총장”이라고. 4년만 하고 물러날 총장이 학내 구성원들에게 욕먹을 각오로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면서 파괴적 혁신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엊그제 전국의 4년제 대학 총장 130여 명이 대구에 모였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세미나에 참석한 총장들은 교육부 차관에게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와 규제 완화, 자율 강화를 주문했다. 차관은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리고 규제를 풀어주고 자율도 주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약속을 지키고 대학은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에 나설 때다. 혁신을 위해 먼저 총장 선출 방식부터 손봤으면 한다. 유능한 총장이 연임은 물론 장기간 재직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장기 플랜은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질적이고 다양한 구성원과 이해 관계자들이 상호작용하는 대학의 리더로서 총장은 전략적 의사결정과 효율적 자원 배분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해야 한다. 학내 갈등을 조정하고 외부에서 돈도 따와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인재 양성을 위해 구조 개혁도 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총장을 뜻하는 ‘프레지던트(president)’의 어원은 ‘앞에 앉다’다. 집단을 대표해 앞에 앉는 사람은 고독하다. 빈곤한 현실 여건 속에서도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뇌하는 대학 총장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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