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0만 명에 육박했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수가 20년 만에 반 토막 나고 최대 교원 노조 자리를 교사노동조합연맹에 내준 것은 ‘교사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교사운동이 교사의 노동권을 확보하고 교육 민주화를 위해 정치·이념 중심으로 전개된 반면 최근에는 교권 보호와 행정 업무 경감 등 실리·복지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MZ 세대’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주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 같은 흐름은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젊은 교사들의 다양한 생각과 요구를 기민하게 반영하는 등 혁신을 꾀하지 않는다면 전교조뿐 아니라 다른 교원단체 역시 갈수록 세력이 약화하고 영향력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법외노조화·내부분열·고령화로 쇠락의 길 걷는 전교조=전교조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만들어진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가 모태다. 1989년 5월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모토로 공식 출범한 전교조는 교원의 노동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촌지 거부와 체벌 금지 등을 내세워 학생·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교원노조법이 제정되면서 합법 노조가 된 1999년 6만 2000여 명이었던 조합원은 2003년 9만 4000여 명까지 늘었다.
이후 점차 조합원이 줄다 2013년 해직 교원이 노조에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후 5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 전교조가 민주노총과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이끄는 투쟁을 한 것이 결정타였다. 당시 지도부 출신 조합원들이 전교조의 비민주성, 정파성, 중앙집권적 구조를 비판하며 ‘교육노동운동 재편모임’을 결성하는 등 내부 분열이 발생했고 이는 2017년 교사노조 창립으로 이어졌다. 전교조는 2020년 대법원 판결로 법외노조 통보가 취소되고 다시 합법노조 신분을 회복했으나 이미 조직력이 크게 약화된 후였다.
전교조는 주축이었던 86세대 교사들이 고령화로 대거 퇴직한 것이 조합원 감소의 주된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젊은 교사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점도 원인으로 꼽는다. 전교조 관계자는 “주축이었던 기존 조합원들이 대거 퇴직 시기를 맞으면서 숫자가 크게 줄었다”며 “젊은 교사들과의 소통과 홍보가 부족했다고 보고 이를 강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 활동 거부감 느끼는 MZ 세대 교사가 늘어난 것도 영향=젊은 교사들이 전교조가 가진 강경 투쟁 일변도의 낡은 이미지와 강한 정치색을 부담으로 느끼고 있는 것도 쇠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경기 지역의 한 30대 초등학교 교사는 “젊은 교사들은 전교조 하면 강경 투쟁이나 이념·정치적 구호부터 떠올린다”며 “전교조 조합원의 주축인 40~50대와 세대 차이도 나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조 자체에 대한 젊은 교사들의 관심이 크게 줄어든 탓도 있다. 경남의 한 고교 교사는 “2010년대에 입직한 교사들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며 “전교조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든 후배 교사들과 괜히 불편한 관계가 될까봐 이미 오래 전부터 가입을 권유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젊은 교사들은 대의명분보다는 교권 침해 등 당장 학교 현장에서 겪고 있는 고충 문제 해결을 더욱 중요하게 느끼는 경향을 띤다. 교사노조는 이념 투쟁이 아닌 ‘실사구시’를 내세우며 이러한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다. 교사노조에 따르면 조합원의 95%가 20~40대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가만히 있어도 노조 가입이 늘었지만 이제는 조직 자체가 변하지 않고 현장과 소통하지 않으면 곧바로 외면받는 상황”이라며 “젊은 교사들이 가진 다양한 생각과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현장과 유리된 채 정치·이념 투쟁을 이어간다면 기존의 전통적 교사노조와 교원단체는 존속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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