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가상자산거래소와 은행 사이의 실명 계좌 제휴를 1대1로만 하도록 한 ‘1거래소-1은행’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금융 당국은 이를 당분간 풀지 않기로 했다.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에 따른 영향과 시장 변화를 보겠다는 것인데 정치 일정을 고려한 판단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최근 은행권에서 요구한 1거래소-1은행 규제 완화에 대해 법인의 시장 참여 영향을 살펴본 뒤 검토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복수 은행 계약이 독과점 구조 강화와 자금세탁 위험 증가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특히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라는 새로운 리스크 요인이 발생할 예정인 만큼 이에 따른 시장 상황 변화나 자금세탁 위험도를 보고 나서 검토할 문제”라고 말했다.
1거래소-1은행 규제는 법으로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금융 당국의 자금세탁방지(AML) 의지에 따라 관행으로 굳어진 ‘그림자 규제’다. 과거부터 규제 완화 요구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앞두고 은행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위 거래소인 업비트와 케이뱅크의 계약이 올해 10월로 종료되면서 하나와 우리은행 등이 이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이달 9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복수 은행 계약을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허용하기로 한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업비트가 시장점유율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독과점 구조다. 종전까지만 해도 업계에서는 오히려 1거래소-1은행 규제를 완화해야 독과점 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법인 시장 참여로 상황이 달라졌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개인고객 시장을 발 빠르게 접수한 업비트가 법인 시장에 강한 시중은행과도 복수 계약을 맺게 된다면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정치권 지적에 따라 거래소 독과점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당국 입장에서 리스크를 더 키울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인 참여가 허용되는 상황에서 제휴 은행까지 늘어나면 AML 관련 위험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가상자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인 참여로 자금세탁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복수 은행 제휴도 가능해지면 당국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큰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 안팎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업비트의 복수 은행 제휴도 올해는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온다. 금융 당국의 최종 입장도 6월 대통령 선거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야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상자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허용되는 법인들의 참여 영향만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빨라도 내년에야 규제 완화를 검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금융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대선이 끝나야 주요한 금융정책이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금융 당국이 당분간 관련 규제 완화를 하지 않겠다고 해도 2단계 가상자산법 논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얘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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