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이 각국 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1970년대식 ‘인플레이션 스파이럴(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6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 세계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격인 BIS가 “금리 인상이 경제 성장세를 심각하게 해쳐도 중앙은행은 금리를 급격히 올려야 한다”며 연례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전했다. BIS는 “금리를 올려도 세계 경제는 저성장·역성장과 고물가가 결합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인플레이션 시대에 접어든 만큼 통화정책을 가동하더라도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BIS는 인플레이션 스파이럴 위험을 높이는 배경으로 현재 ‘실질금리’가 너무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수치다. BIS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비교적 빠르게 올리고 있지만 물가 상승세가 더 가팔라 현재의 실질금리가 1970년대의 오일쇼크 때와 같은 마이너스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물가 상승세에 미치지 못하는 속도로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실질금리 하락을 의미한다”며 “이렇게 되면 물가 상승 위험을 제어하기 힘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인플레이션 통제에 실패할 경우 1970년대보다 더욱 큰 경제적 파장이 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BIS가 우려하는 부분은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은 막대한 부채로 자산 가격이 부풀려졌다는 점이다. 이는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할 경우 가계와 기업의 부채 상환 부담도 급속도로 커져 경제 주체들의 재무 붕괴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도 하락하면서 경제 전반의 충격파가 커지게 된다.
BIS는 고물가 고착화도 경고했다. BIS는 “이미 인플레이션 심리가 정착되는 전환점에 도달했을 수 있다”며 “이는 중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고물가가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부르고 임금 인상이 다시 물가 상승을 야기하는 악순환에 접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WSJ는 “이미 스페인 등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과 임금 인상을 연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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