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도산 전문 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이 앞으로 개인회생 변제금에서 주식·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은 제외한다.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실패한 2030세대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법원이 선제 조치에 나선 것이다. 젊은 층의 정상적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나 일각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회생법원은 28일 개인회생 절차에서 변제 금액을 산정할 때 주식·가상화폐 투자 손실금은 제외하는 내용의 실무 준칙을 제정해 7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 개인회생 신청자의 청산 가치를 산정할 때 주식 또는 가상화폐 투자로 발생한 손실금은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조사 결과 채무자가 투자 실패를 가장해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인정될 때에는 예외적으로 청산 가치 산정에 투자 손실금이 반영된다.
일정한 소득이 있는 데도 빚을 갚기 어려운 채무자는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해 빚을 감면 받을 수 있다. 법원은 채무자의 현재 자산과 월 소득 등을 고려해 채무자가 갚을 수 있는 범위에서 변제해야 하는 총금액인 변제금을 정한다. 이때 변제금은 원칙적으로 채무자의 현재 자산을 모두 처분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가치인 청산 가치보다 커야 한다.
새 규정은 사실상 2030세대를 겨냥한 조치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0대 다중 채무자(세 곳 이상 금융기관에 돈을 빌린 사람)가 2019년 말 대비 21% 급증할 만큼 2030세대의 부채 부담이 급증했다. 주식·가상화폐 가격 급락, 물가·금리 급등, 채무 상환 유예 조치 종료(9월)로 올 하반기에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하는 사람들)’의 개인회생 신청이 폭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이에 따라 서울회생법원은 ‘개인회생 실무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TF는 현행 개인회생 절차에서 주식·가상화폐 투자로 얻은 손실금을 청산 가치에 반영하는 실무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손실금은 채무자의 경제적 이익이 아닌데도 변제금을 청산 가치보다 많게 보이려 산정 범위에 끼워넣는 방식은 발목 잡기라는 것이다.
법원은 “채무자에게 과도한 변제를 요구했던 기존의 개인회생 실무가 개선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주식 또는 가상화폐 투자 실패로 경제적 고통을 받는 20~30대 채무자들의 경제 활동 복귀 시간이 한층 빨라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가했다.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은행 예대마진 축소 등 ‘영끌족’ 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필요한 조치를 내놨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무법인 광장의 홍석표 변호사는 “직원들의 회생 문제로 상담을 의뢰하는 법인 수가 기존보다 2배로 늘어나는 등 개인 도산 문제가 심각해질 조짐이 있다”며 “회생 절차 없이는 젊은 층의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반면 이번 조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2030세대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등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2030만이 아니라 다른 연령층에도 코인에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많다”며 "국가가 손실 가능성을 알면서도 투자한 개인들의 부채까지 탕감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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