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정 모 군은 지난 2019년 10월 ‘필라델피아 양성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으로 진단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이듬해 3월 형제로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고 '완전관해'(혈액검사에서 백혈병 세포가 제거된 상태) 판정을 받아 퇴원했지만 2년 여만인 올 4월 18일 같은 질환이 재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미 항암과 조혈모세포 이식 치료까지 받고 재발한 터라 고심하던 의료진은 최근 도입된 키메라항원수용체 T세포(CAR-T)를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정모군의 혈액에서 면역 T세포를 추출한 건 지난 5월 10일. 맞춤형 치료 세포인 ‘킴리아’를 만들기까지 한달 가량 소요됐고, 6월 14일 정군에게 투여가 이뤄졌다.
킴리아 투여 후 빠르게 상태가 호전된 정군은 이후 시행된 골수검사에서 완치 판정을 받고 지난 7월 1일 퇴원했다. 7월 7일 정기 혈액검진에서도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음성인 ‘완전관해’ 판정을 받았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소아혈액종양센터는 어린이 백혈병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CAR-T 세포치료제 ‘킴리아’를 투약해 치료에 성공했다고 11일 밝혔다.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은 모든 연령대에 걸쳐 발생하지만 소아에게 가장 흔히 발병한다. 15세 미만의 소아 백혈병의 75%를 차지한다고 알려졌는데, 정군과 같이 필라델피아 염색체에 양성 반응을 보이고 조혈모세포이식 치료까지 받은 후에도 재발하는 사례도 있다.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전 세계 최초로 개발한 CAR-T 치료제 '킴리아'는 이처럼 기존 항암치료에 반응이 없던 백혈병 환자들에게 높은 효과를 보이는 첨단 의약품이다. 단 1회만 투여하면 혈액암 환자의 절반 가량이 완치돼 ‘원샷 치료제’ 또는 ‘꿈의 항암제’라고도 불린다. 1회 투약으로 말기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는 10명 중 8명, 말기 림프종 환자는 10명 중 4명이 장기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의 혈액에서 채취한 면역 T세포를 냉동시킨 뒤 환자 맞춤형으로 배양해 다시 환자의 몸 속에 집어넣는 방식이다. 면역 세포가 암 세포를 정확히 찾아 강력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 1회 투약비용이 약 5억원에 달했지만, 올해 4월부터 킴리아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금이 크게 줄었다. 이제는 약 100만 원 정도만 부담하면 투약할 수 있다.
정군의 주치의인 김성구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소아 백혈병은 소아암 중 가장 비율이 높은 질환이다. 환아가 진단 받으면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까지 받으며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워야 한다"며 "이번 성공으로 기존 치료법으로도 건강을 되찾기 어려웠던 많은 환아들에게 새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소아혈액종양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재욱 교수는 “앞으로도 치료 대상 환아를 확대하는 한편 새로운 치료 후 생길 수 있는 환아의 장기적인 합병증도 센터 차원에서 세심히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