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징계 이후 국민의힘이 때 아닌 ‘진윤’ 감별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이 대표 징계 이후 수습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회동이 발단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장제원 의원이 불참하면서 ‘권성동-장제원 갈등설’이 커진 겁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과 정치인 회동에는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배석하지만, 장 의원과 가까운 이진복 정무수석도 만찬에 불참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누가 찐 윤핵관이냐’는 ‘진짜 윤심(尹心)’ 읽기 경쟁에 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하며 권-장 갈등설에 불이 붙었습니다.
‘진짜 윤심(尹心)’ 읽기 경쟁 시동…권-장 불화설 도마에
단순히 윤 대통령과 권 대행만 만났다고 해서 갈등설이 커졌다기 보다 두 사람 모두 ‘포스트 이준석’ 이후 주요 당권주자라는 점에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는 겁니다. 이 대표 징계 사태 직후 혼란 수습과정에서 권 대행과 장 의원 간 의견 차이가 컸다는 분석입니다. 다시말해 내년 6월 당대표를 노렸던 권 대행은 ‘이준석 체제’유지를, 장 의원은 징계 뒤 조기전당 대회 등을 통해 자신이 사무총장을 맡아 공천권을 진두지휘하겠다는 구상이었다는 식입니다.
장제원 “한번 형제는 영원한 형제”·권성동 “변함없는 형·동생 사이”
갈등과 불화설이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자 15일엔 권-장 오찬 회동으로 불화설 진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갈등이 길어질 경우 새 정부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이날 권 대행은 오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미 당 지도체제 관련해서 결론이 났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얘기를 나눈 것은 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힘을 합쳐 윤석열 정부를 뒷받침할 것인가 이런 부분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윤석열 정부 탄생하는데 앞장선 만큼 윤석열 정부가 성공해야 당도 살고 정치인으로서 장 의원과 저도 제대로 된 평가 받을 수 있으니까 힘을 합치자고 했다”고 했습니다.
장 의원도 “지난 1년 간 윤석열 대통령 선거 과정과 과정에 있던 일들, 우리가 15년 정치 같이 하면서 나눈 것에 대해 얘기했다”며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화설에 대해서는 장 의원은 “불화나 갈등 없다고 얘기하지 않았냐”고 일축했고, 권 대행도 “불화설과 관련해서는 이야기 나눈 게 없다. 평상시 같이 만나서 대화했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계산했느냐’는 질문에 권 대행은 “당연히 형이 해야지”라며 웃었고, 장 의원은 “당연히 형(권 대행)이 했다”고 답했습니다. “어 브라더 이즈 어 브라더(A brother is a brother). 한번 형제는 영원한 형제(장제원 의원)”·“정치적 동지이자 변함없는 형·동생 사이(권성동 대행)”라던 두 사람 말처럼 우애 좋은 형·동생이었습니다.
‘또 만나냐’ 묻자 권성동 “약속 많아” 장제원 “나도 바빠”…미묘한 긴장감
하지만 당 안팎에선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 이날 추후에 다시 만날 일정에 대해서 권 대행은 “모르겠다. 바빠서”라고 답했고 장 의원도 “저도 바빠서”라고 답했습니다. 실제 장 의원은 14일 기자들과 만나 ‘당 대표 직무대행 체제에 이견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 지금으로서는”이라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권 대행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의 궐위가 아닌 이상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후임 당 대표를 뽑을 수가 없다. 또 최고위원들이 전원 사퇴하지 않는 한 비상대책위원회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두 사람의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지시나요. 이미 옛일이 된 지 오래지만 국민의힘은 박근혜 정부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한 이후 ‘진박·가박’ 논란이 여권을 휩쓸었습니다. 진박은 ‘진짜 친박’ 또는 ‘진실한 친박’, 가박은 ‘가짜 친박’이란 뜻입니다. ‘박심(朴心) 읽기’ 경쟁 자체가 옛 이야기지만 윤 대통령과 권 대행의 회동 이후 다시 진윤 경쟁이 불붙으며 기시감이 강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주류로 발돋움 한 친윤계가 '진짜 윤심'을 고리로 계파 싸움에 돌입한다면, 과거 ‘진박’ 논란은 재연될 소지가 높다는 관측입니다.
‘진박’ 감별 결과…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선·2020년 총선 대패
진박 감별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탈당해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제2당이 됐고, 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까지 내리 지게 됩니다. 그 사이 박 전 대통령 탄핵 시기에는 친박에서 벗어나는 탈박 역시 성행한 바 있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한 달 전 당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의 몰락 과정에서 가장 큰 변곡점은 2016년을 앞두고 펼쳐진 진박논란이다. 누군가를 자르고 넣기 위한 공천 갈등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윤 대통령 취임 2개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찐’ 윤핵관을 감별할 여유도 이유도 없습니다. 오찬 회동으로 봉합된 ‘권-장 불화설’이 다시 또 촉발할 경우 국민의힘은 2024년 총선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심보다 민심을 살펴야 할 때입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