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요? 제가 왜요? 제가 장군감입니까?”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27일 개봉을 앞두고 관심을 끈 이유 중 하나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박해일의 존재다. 과거 매체에서 다뤘던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전장을 이끄는 영웅적인 행적에서 드러나는 카리스마적 존재였고 전편 격인 ‘명량’에서 최민식도 이순신을 불같은 용맹함과 결단력의 캐릭터로 그렸다. 반면 박해일의 이미지에서는 이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본인조차 출연을 제안 받고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21일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김 감독이 ‘해일 씨가 이순신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을 때 몇 번을 반복해서 역으로 물어봤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해일의 거듭된 질문에 “네가 최민식 선배 같은 장군감은 아니다”라고 말한 김 감독은 이순신을 주도면밀하게 전략을 짜서 압도적인 승리의 쾌감을 보여줄 지장, 덕장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한산’의 배경인 한산해전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다. 압도적 승리가 이순신의 용맹성을 부각하기 좋아 보이지만 박해일은 적은 대사량 속 차분한 인상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꼿꼿한 모습의 이순신을 ‘물 흐르듯’ 소화한다. 처음부터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가고자 했던 박해일은 “굳이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카리스마를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명량’이 겪었던 이른바 ‘국뽕’ 논란을 피하기 위해 감정의 톤과 수위를 최대한 차분히 가져가고, 어려움을 버텨내는 모습 속에 자연스럽게 영웅적인 면모가 드러나게 연기했다. 그는 “‘명량’의 이순신이 불같은 기운으로 전투에 임하고 승리의 역사를 만들었다면 이번엔 물의 기운으로 임해 모든 배우들이 잘 보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순신이라는 엄청난 위인을 연기해야 하는 부담감은 피할 수 없었다. 박해일은 “이순신을 연기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흥행의 측면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촬영 전 이순신을 공부할수록 흠결도 없는 사람이다 보니 본인이 점점 초라해지는 걸 느꼈다는 그는 “이 간극을 좁히려고 마음 수양부터 했다. 장군님이 수양을 많이 한 도인 같은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고 돌아봤다. 한산도에 있는 사당인 ‘제승당’에도 들러 마음도 다잡았다. 첫 촬영에서도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 판옥선 위 지휘 공간에 서 있는데, 단역부터 안성기·손현주 등 베테랑까지 100여 명의 배우·스태프가 자신을 주시하는 걸 느꼈다. 그는 “서 있는 자세조차 예민해지더라”며 “그래서 제가 초반부터 단단한 산처럼 자리 잡아서 모든 캐릭터가 명확하게 보일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박해일은 관객들이 ‘한산’을 할리우드 영화처럼 봐주셨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순신이 해외 관객들에게도 무리 없이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캐릭터가 다른 나라 해군 제독처럼 충분히 전 세계 관객들에게 매력 있게 영화적 장르의 요소로 알려지면 좋겠다”며 웃었다. ‘외계+인’ ‘비상선언’ ‘헌트’ 등 대작 영화들의 잇단 개봉이라는 보기 드문 풍경을 두고도 “이렇게 메뉴를 다양하고 푸짐히 차렸으니 관객들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처럼 뷔페 드시듯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