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이 재래식 전쟁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대비를 잘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핵전쟁 상황’은 빼고 연습해왔어요. 이래서야 북한이 만에 하나 핵 도발이라도 하면 우리 군이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문재인 정부 재임기에 예편한 우리 군의 한 예비역 장성이 근래에 서울경제와 만나 전한 이야기다. 한미가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는 상황만을 전제로 연합훈련 및 연합연습을 해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역 군 간부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필자에게 귀띔했다. 한 영관급 간부는 “그동안 한미가 시뮬레이션 워게임 방식으로 연합지휘소연습(CCPT)을 정례적으로 할 때마다 (첨단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의 핵 사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연습해왔다”며 “하지만 만약 북핵 통제에 실패해 핵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제로 워게임을 벌이면 우리 군의 승률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는 영변에 핵 시설을 지어 핵 개발을 본격화했다. 특히 2006~2017년에는 총 6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고 올해 들어서는 7차 핵실험 준비를 마친 상태다. 현재 북한은 최소한 수십 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향후 7차 핵실험에 성공할 경우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저위력 전술핵무기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마커스 걸러스커스 전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 북한 정보분석관은 “근미래에 핵무기를 쓸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북한”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 북한의 핵 공격 역량이 급성장했음에도 한미 워게임 연습 시 핵전쟁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간 한미 모두 북핵 능력을 얼마나 경시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 문재인 정부가 임기 초였던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도발을 겪고도 대규모 한미연합실기동훈련을 폐지하고 방역 등을 명목으로 CCPT 규모마저 조정했던 것은 크나큰 오판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미연합훈련·연습 체계가 복원되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22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부처 업무 보고’에서 축소·폐지됐던 한미연합훈련·연습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당면한 북핵 위협 속에서 우리 군의 대비 태세를 다시 세운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다.
다만 단순히 훈련의 형식과 규모만 복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훈련 내용도 변화한 안보 상황에 맞게 대폭 손질해야 한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 투발 수단을 다변화·대량화했고 그에 비해 우리 군의 정찰 감시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 미국의 정찰위성·항공기 등이 우리 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있지만 이마저도 기상 악천후, 북한의 기만전술을 100% 극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의 국지적 전술핵 도발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반영해 한미연합훈련·연습의 내용을 발전시켜야 한다.
바꿔야 하는 것은 우리 군 및 정부의 단독 훈련·연습도 마찬가지다. 충무훈련·을지태극연습 등도 한층 발전한 북핵 공격 역량을 감안하지 않고 뒤처진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총체적으로 점검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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