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미국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주먹 인사’ 입니다. 국제적인 왕따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를 쳐놓고 사우디에서 가서는 왕세자랑 친근한 주먹인사를 했다고 해서 참 무성한 뒷말을 남겼습니다. 한때 바이든 대통령의 경쟁자였죠. 버니 샌더스 민주당 의원이 “그 나라의 지도자는 워싱턴포스트 언론인의 살인과 연관돼 있다” 며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그 주먹인사의 대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살인자’라고까지 불리던 왕세자는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미국은 대체 뭘 얻었냐는 겁니다.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 이후 에너지 시장에 위기감은 오히려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잔인한 겨울. 에너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에너지 시장에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 닥칠 수 있다는데요.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점점 막히는데, 여기에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중국의 수요가 증가하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은 말 그래도 ‘쇼크’를 맞을수 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는 석유 하나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까지 도처에 문제가 되지 않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더 복합적인 위기라는 겁니다.
세계적인 에너지 석학이죠. 다니엘 예르긴 S&P 글로벌 부회장이 최근에 세계 에너지 위기가 심화될 수 밖에 없는 다섯 가지 이유를 내놨는데요. 오늘은 다니엘 부회장의 분석을 기반으로 에너지 시장과 미국의 고민을 짚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가장 문제는 역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말로 유럽으로 보내는 천연가스를 차단하려 한다는 겁니다. 지난달이었죠 러시아의 국영 회사 가즈프롬이 네덜란드와 덴마크 등으로 향하는 가스를 끊었습니다. 덴마크 전력회사 오스테드(Orsted)에게 루블화 결재를 요구했다가 응하지 않자 계약을 취소한 건데요. 공교롭게도 이 시점이 덴마크가 유럽연합의 공동방위에 참여하겠다고 국민투표를 실시한 시점과 겹칩니다. 러시아의 의도와 목적이 명확해 보입니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막대한 독일은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계속해서 삐걱대면서 현재 독일의 전력회사들이 전기료를 올리면서도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다는데요. 로버트 하백 독일 경제장관은 “손실이 너무 커져서 어느 순간 감당할 수가 없게 되면 연쇄적인 붕괴가 올 수 있다” 이렇게 까지 얘기를 했습니다. 에너지 시장 발(發)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부터는 미국이 풀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바로 미국 중동정책의 핵심이죠. 이란 핵 협상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위협까지 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란의 핵 협상 복귀는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핵 협상이 없으면 이란산 원유 역시 정상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풀릴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란의 원유 생산 능력이 핵 협상 파기 전에 하루 390만 배럴 정도 였는데 지금은 240만 배럴 정도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빈틈을 러시아가 파고 들어가면서 비관론은 더 커지고 있는데요. 러시아 안에서 두문불출 하던 푸틴 대통령이 지난주에 직접 이란을 찾아가서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만났습니다. 마치 미국과 핵협상에 나설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을 설득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 번 째는 사우디의 요지부동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에는 크게 세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가 원유 증산을 통한 국제 유가 안정이고, 두 번째가 중동에서의 대 중국 견제, 세 번째가 이란에 맞서기 위한 중동 안보 자원의 결집, 이른바 중동판 나토(NATO)의 출범입니다. 그런데 세가지 모두 결과가 시원치가 않습니다.
특히 사우디는 바이든 대통령이 원하는 증산에 대해 더 이상 증산할 여력이 안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게 꼭 엄살 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사우디의 원유 생산능력이 하루 1,200만~1,250만 배럴 정도인데요. 실제 올해초까지 생산량이 하루 1,050만 배럴 정도였다가 생산량을 1,200만 배럴 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지난달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는데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의 증산 여력이 이미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겁니다. 물론 오는 8월 3일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일부 증산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지만 그 물량이 유가를 확 떨어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네 번째는 글로벌 정유 산업에 보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정유산업은 통상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으로 나뉘는데요. 유전을 채굴해서 원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것이 업스트림 단계이구요. 원유를 정제해서 소비자에게 판매까지 하는 단계가 다운스트림입니다.
그런데 원유 물량과 별개로 다운스트림 부분이 굉장히 타이트합니다. 쉽게 말해 정제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당장 미국만 해도 원유 정제 능력이 2014년 이후 최저 수준입니다. 허리케인, 코로나, 정제마진 감소, 석유 시장 전망 악화 등 다양한 위기들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정유 공장들이 줄줄이 폐쇄됐습니다. 중국의 정유공장은 상황이 더 안 좋은데요. 가동률이 70% 미만인 상태입디다. 다니엘 부회장에 따르면 지금 전 세계적으로 하루 정제 능력이 약 400만 배럴 가량이 감소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 말은 결국 원유를 확보하더라고 이를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는 겁니다. 글로벌 시장 역시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고 있는데요. 원래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석유 제품들을 대거 보내고 유럽에서 남는 물량은 미국으로도 보내지는 방식이었는데 이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 문제는 중국의 석유 수요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코로나 제로 정책으로 인한 중국의 폐쇄가 석유 수요를 상당히 감소시켰던 것도 사실입니다. 중국 수요가 감소하는 와중에서도 국제유가는 지속적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다시 석유 수요가 증가하면 국제유가는 완전히 고삐가 풀릴수도 있습니다. 물론 중국이 여전히 코로나 제로 정책을 고수한다고 하지만요. 성장률이 더 떨어지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에 장애물로 까지 부상하면 중국 경제를 옥죄는 각종 규제가 해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니엘 부회장은 그래서 앞으로 약 5~6개월이 세계 에너지 시장에 아주 중대한 시기가 될거라고 봤습니다. 유럽이 러시아의 가스 없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것인지,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해법을 내놓을 것인지, 시진핑 주석은 3연임을 위해 중국을 어떤 포지션 속에 둘 것인지 모든 문제들이 얽혀 있습니다. 윤홍우의 워싱턴 24시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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