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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박사 28% "외국행 희망"…해외서 학위 따도 65%가 "안 돌아갈 것"

[팍스테크니카, 인재에 달렸다]

■고급인력 '脫코리아' 가속

韓 고용 불안·저연봉 탓 근무 꺼려

자녀 교육·주거문제도 잔류 걸림돌

"제대로 된 대우·정주 여건 개선을"





3차원 반도체 설계를 연구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테라랩에서 최근 박사 학위를 받은 3명이 애플과 테슬라, 아날로그디바이시스(ADI)에 취업했다. 이들은 취업 비자가 아닌 ‘O-1’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정부가 과학·예술·스포츠 등 특수 분야의 인재에게만 내주는 O-1 비자는 6개월 만에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다. 이들은 연봉으로 최소 15만 달러에서 20만~30만 달러를 받고 별도의 스톡옵션이 주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호 교수가 이끄는 테라랩에서는 최근 10년간 30여 명이 구글·애플·퀄컴·엔비디아·테슬라 등 미국 기업에 입사했다. 김 교수는 “박사 제자들의 진로는 국내 잔류와 해외 취업이 반반”이라면서 “높은 연봉과 자유로운 연구 환경, 교육·주거 스트레스가 비교적 덜한 미국 진출을 대체적으로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로봇, 사물인터넷과 같은 핵심기술 분야의 인재 양성·확보가 국가적 과제로 부상했지만 이공계 우수 인력의 ‘탈코리아’가 지속되고 있다. 국내 우수 인력들이 해외로 떠나고 해외 인재 유치도 뾰족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우리나라는 ‘인재 유출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인재유출지수(BDI)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BDI는 2000년 5.43에서 2006년 4.91, 2015년 3.98로 평가됐다. BDI 숫자가 0에 가까울수록 해외에서 일하는 인재가 많고, 10에 가까우면 인재들이 자국에 머물며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미다. 그나마 2018년 4.00으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인재 유출이 많은 국가로 나타났다. 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 배출되는 5600여 명의 이공계 박사 중 약 1600명(28.5%)은 외국행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재 유출·유입 요인은 다양하지만 임금과 근로조건(연구 환경, 조직 문화), 직업만족도, 가족 문제, 자녀 교육, 정주 여건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 고급 인력에 대한 처우가 좋아지고 근로조건도 향상됐지만 대표적 인재 유입 국가인 미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국내 이공계 우수 인재들이 미국 스탠퍼드대나 UC버클리대로 유학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미국이 근로자로 살기에 나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우리 경제가 성장한 만큼 우수 인재들에게 제대로 대우해주고 있는지 따져볼 때”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기업·대학·연구소로 떠난 인재들도 있지만 해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돌아오지 않는 인재도 여전히 많다. 미국과학재단(NSF)의 ‘2018년 과학공학지표’에 따르면 2012~2015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 이공계 전공자 4303명 중 계속 남겠다는 의사가 있다는 응답자가 65.7%에 달했다. 2010~2013년 박사 학위 취득자의 체류 의사 비율 65.1%에 비해 더 늘었다. 고용 불안과 낮은 연봉 등 열악한 처우 때문에 연구자로서 생산성이 가장 왕성한 시기인 박사후과정(포스트닥터)을 해외에서 보내고 눌러앉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15년 미국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GE를 거쳐 주립대 의대로 옮긴 A교수는 “부모·형제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도 자녀 교육과 주거 문제를 생각하면 미국에 남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서 “연봉이나 연구 환경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도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으나 투입한 예산에 비해 성과는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4년부터 박사급 연구자를 유치하는 BP(Brain Pool) 사업을 실시했고 2020년부터 신산업 분야의 정상급 연구자를 유치하는 BP플러스 사업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18년간 1830억 원을 투입했으나 2619명을 유치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국내 우수 인력을 머물게 하고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급여 등 처우 개선과 함께 연구 환경 개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구축, 신산업 육성, 창업 생태계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우수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비단 돈 때문만은 아니라 주거·교육 문제 등 다양한 요인 때문”이라면서 “가령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인근에 우수 인재를 위한 주택 단지를 조성하고 좋은 학교를 설립하는 등 정주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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