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5일 자국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의 조찬 회담에서 “현재 최고조에 달한 양안 갈등은 일본의 안전 보장과 국민 안전에 중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날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에워싸고 군사훈련을 벌이는 도중에 발사한 둥펑(DF) 탄도미사일 11발 가운데 5발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진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NHK에 따르면 중국 탄도미사일이 일본이 설정한 EEZ 내에 낙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뿐 아니라 같은 날 오키나와현 사키시마제도 주변 상공에는 동중국해에서 날아온 중국군 무인기 2기가 출몰해 일본 항공자위대가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켜 대응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중국군의 공격 사정권에 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현실화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대만에서 약 110㎞ 떨어진 오키나와 요나구니지마에서는 현지 어업협동조합이 어민들에게 중국의 군사훈련 구역을 알리는 자료를 배포하고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양안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미국과 일본이 안보 유대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기시다 총리와 펠로시 의장 간 회담 의제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양국 간 동맹 강화 방안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 페니 윙 호주 외교부 장관 등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안보 협의체 쿼드(Quad) 3개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전날 공동 회담을 열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밀한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일본의 방위력 증강에 적극 협력할 소지도 다분하다. 미 국방부 부차관보 출신인 엘브리지 콜비는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방위 능력은 중국의 위협을 막아내기에 불충분하다”며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대인 방위비를 GDP 대비 3%로 3배가량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권 자민당의 방위비 목표인 GDP 대비 2%보다 더 공격적인 군비 증강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대만 포위 군사훈련 이틀째인 이날도 다수의 군용기와 군함을 이끌고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었다. 대만 국방부는 "이날 오후 5시 기준 중국 전투기 68대와 군함 13척이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대만 중앙통신(CNA)은 대만과 중국을 구분하는 비공식 국경인 중간선을 이틀 연속 침범한 것은 중국군이 전에 없는 공격성을 띠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군이 대만 무력 침공을 가정하고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멍샹칭 중국 국방대 교수는 “(중국군은) 대만과 초근접 지역에서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대만 ‘통일 전쟁’의 실전 능력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도 태평양 인근에 ‘전진 배치’한 전략자산으로 중국의 ‘실력 행사’에 대비하고 있다. 미군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도착한 2일 필리핀해에 배치한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를 철수시키지 않고 당분간 이 지역에 둔 채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미국은 중국이 무엇을 선택하든 그에 대비돼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중 간 군사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경계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군 관계자를 인용해 미 공군이 당초 이번 주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실시할 예정이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 3’ 시험 발사를 연기했다고 보도했다. 발사 연기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중국과의 추가 관계 악화를 피하기 위해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중 간의 △전구사령관 전화 통화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 군사안보 협의체 회의를 각각 취소하고 △불법 이민자 송환 협력 △형사사법 협력 △다국적 범죄 퇴치 협력 △마약 퇴치 협력 △기후변화 협상을 모두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펠로시 의장과 그 직계 가족에 대한 제재 조치도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중 외교부는 “중국의 강력한 반대와 엄정한 항의에도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을 강행한 데 대해 이 같은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