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하던 일이 대만해협에서 실제 벌어지니 불안감이 큽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할 때마다 우리 수출 물류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양안 문제, 미중 갈등을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에요.”(국내 대기업 수출 담당 임원)
중국군이 4일 대만 주변을 6개 구역에 걸쳐 포위한 채 대규모 군사훈련에 나서면서 동북아를 지나는 항공 및 해상 물류망에는 비상이 걸렸다. 중국이 미사일과 장거리포를 대거 발사하며 무력시위에 나서자 대만해협 등을 지나는 항공사와 해운사들이 해당 지역 일대를 피해 항공기·선박의 경로를 바꾸거나 일부 항공편을 취소했다. 우리 해운업계는 대만의 주요 항구인 가오슝 및 지룽이 한국 선박들도 많이 드나드는 물류 허브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의 이번 군사훈련은 8일 오후에 종료된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간 대결 구도가 누그러지지 않는 이상 비슷한 위기가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특히 대만해협을 넘어 한반도 주변이나 우리 수출 선박이 지나는 남중국해 일대로 중국의 무력시위 범위가 한층 확대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국내 해운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미중 갈등과 양안 갈등이 한층 격화되면) 중국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물자 반입 등을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대만해협이나 우리 주변 공역, 남중국해 일대에서 검문·검색에 나설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이어서 “일반 상선에 실린 일반 화학제품이나 의류품마저도 안보를 위협하는 화학무기나 군수품일 수 있다는 식으로 중국이 막무가내로 뱃길을 막아서면 일반 상선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서는 중국 위협에 대응해 우리 해군이 우리 상선을 원양에서 보호할 능력이 거의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좌초 위기 '경항모'
우리 해군은 이번 사태와 같이 원양 해역에서의 안보 위협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1990년대부터 ‘대양해군’으로 성장해나가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한반도 근해에서 방어 작전을 펴는 ‘연안해군’ 체계를 벗어나 먼바다에서도 작전을 펼 수 있는 원거리 해군 투사 역량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특히 항공모함을 갖춘 기동함대 건설을 대양해군 건설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왔다.
지난해 4월부터는 경항공모함을 건조하려는 해군의 발걸음이 한층 빨라졌다. 국방부 기자단에 비공개 설명회를 갖고 2033년까지 반드시 경항공모함을 도입하겠다고 역설했다. ‘2022년도 정부 예산’에는 마침내 경항모 사업 착수 예산이 담겼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경항모 사업은 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새 정부 국방부 업무 보고 등에서 경항모 사업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와 해군은 말을 아끼고 있다. 후순위로 사업이 밀리거나 아예 좌초될 가능성도 전해진다.
한 예비역 해군 제독은 “기존의 해군 목표대로라면 2030년대에 모두 3개의 기동전단을 완성해 우리 관리 해역을 넘어선 지역에서도 우리 상선 보호를 비롯한 다양한 작전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었다”며 “그 핵심 사업이 경항모 건조인데 해당 사업에 제동이 걸린다면 원양해군으로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도 “우리 무역에 중요한 해상로가 남중국해·싱가포르·말라카해협인데 이런 먼 지역들에서 우리 해군이 상선 보호 역할을 하려면 항공모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와 해상무역로가 비슷한 일본까지 감안하면 한미일이 연합해 해상무역로를 보호하는 데 협력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내 분쟁에 무방비인 韓
향후 미중 관계의 전개 방향에 따라서는 우리나라도 역내 안보 분쟁에 중강도나 고강도로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행위에 나서고 미국이 이에 대해 군사적 개입에 나설 경우 동맹국인 대한민국도 불가피하게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특히 양안 간 무력 분쟁 시 주한 미군 등의 역할 여부를 놓고 불똥이 한반도로 튈 여지가 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자는 “최악의 경우 대만 문제를 놓고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고치지 않는 이상 주한 미군이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주한 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상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에서 우리나라에 주둔이 허용된 것이므로 한반도 이외 전구에서 전투를 벌이거나 지원 활동을 벌이게 된다면 조약 위반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당국자의 설명에는 대부분의 군사 전문가들도 동의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주한 미군 부대 순환 배치 등의 형식으로 국내 주둔 미군을 빼낸 뒤 본국으로 귀대시키지 않고 대만 관련 분쟁 지원에 투입하는 등의 우회 방식을 쓴다면 조약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이때 순환 배치를 명분으로 한국에서 빼낸 기존 주둔 미군을 대신할 후속 부대마저 미국의 대만 문제 대응에 따른 병력 부족을 이유로 적기에 제대로 도착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대한 한미 연합 대비 태세에 한동안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미중 간 무력 충돌 발생 시 북한이 동맹인 중국 지원을 명분으로 끼어들 수 있고 이 경우 대만을 둘러싼 분쟁은 자칫 한반도 내 전쟁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같은 다양한 역내 분쟁 시나리오에 대응한 우리 군의 대응 시나리오는 정교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복수의 우리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역내 분쟁과 관련해 중국에 대응하는 작전 계획은 한미 연합 차원은 물론이고 우리 군 자체적으로 작성된 적이 없다. 그간 한반도와 관련한 한미 동맹 및 우리 군 차원의 군사력 건설이 주로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초점을 둬왔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가 아닌 일로 한중 간 군사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인식이 우리 정부와 군에 깊게 깔려 있는 점도 양안 분쟁 후폭풍에 대비한 작계 마련 미비의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크게 벌어진 한중 군사력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결말이 나지 않는 이상 중국은 군사적 팽창주의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과 중국 간 군사력 격차는 좁히기 힘들 정도로 벌어져 있다. 우리 국방부의 ‘2020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한중 간 병력 규모는 약 3.7배(중국 203만 5000명·한국 55만 5000여 명)에 이른다. 특히 양국 군사 마찰 시 직접적인 우열을 가를 해군력에서 중국은 이미 ‘넘사벽’이 됐다. 우리 군이 1척도 갖지 못한 항공모함을 이미 3척이나 보유했고 추가로 건조가 이뤄지고 있다. 항모를 제외한 전투함(구축함·호위함·초계함 등)으로만 보아도 2020 국방백서 기준으로 중국(289척)은 대한민국(100여 척)의 2배를 훨씬 웃도는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 잠수함 수로 보면 격차가 약 5배에 육박(중국 59척·한국 10여 척)한다. 공군력에서도 우리 군은 크게 열세다. 중국은 핵무기 등을 탑재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를 176대나 보유하고 있는 반면 우리 공군은 이렇다 할 폭격기를 보유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중국은 약 35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핵보유국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했으며 재래식 탄도미사일조차도 대부분은 사거리가 중국 수도 등에 미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집권기 한미 미사일 지침 폐지 이후 우리 정부와 군이 사거리와 위력을 대폭 늘린 고위력 탄도미사일을 개발해왔지만 아직 수량이 충분하지 못해 중국의 핵무기에 대한 억제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이 같은 한중 간 군사력 격차를 보완하고 역내 군사 분쟁의 리스크를 억제하려면 한미 동맹 강화뿐 아니라 일본, 호주, 동남아 국가 등 우리와 지정학적 이해를 함께하는 주요국들과 안보 차원의 협력을 증진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