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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브' 서예지 논란 딛은 박병은의 뜨거운 열정

'이브' 박병은 /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무려 20년의 무명 생활을 끝내고 이제는 한 작품을 끌고 가는 어엿한 주연의 자리에 오른 배우 박병은의 연기 열정은 남다르다. 이 열정은 무명 생활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 '이브'에서도 마찬가지다. 논란이 있던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부담이 될 수 있었겠지만, 박병은은 오직 작품과 캐릭터만 생각하는 단단한 배우였다.

tvN 수목드라마 '이브'(극본 윤영미/연출 박봉섭)는 13년의 설계, 인생을 걸고 펼치는 이라엘(서예지)의 가장 강렬하고 치명적인 격정 멜로 복수극이다. 이라엘이 복수를 위한 도구로 선택한 건 재계 1위 LY그룹의 최고 경영자 강윤겸(박병은)이었다. 강윤겸은 대한민국 미혼 여성들이 원하는 신랑감 1위다. 장남의 권위와 견제를 뒤집고 그룹 후계자로 지목된 차남이라는 점에서 재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그가 정권 창출의 미다스 손이라 불리는 한판로(전국환)의 딸 한소라(유선)와의 결혼 제의를 받아들임으로써 LY그룹은 국내 최고가 됐다. 이렇게 악마와의 결탁도 서슴지 않았던 그가 이라엘을 만나 치명적 사랑에 빠지면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이브'는 박병은이 데뷔 약 24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부담이 클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예전과 똑같은 자세로 작품에 임했다는 박병은은 굳이 부담감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저 현장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있으려고 노렸했을 뿐이다.

"안양예고 다니면서 연기하고, 중앙대학교 연영과를 다니면서 연기했어요. 정확히 따져보진 않았는데 아마 24년이 된 것 같아요. 전 그저 연기만 계속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주연을 맡으면서 주변에서 부담되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한테는 주연이나 조연이나 똑같아요. 롤과 회차가 많아졌을 뿐이죠. 자칫 주연이라고 의욕을 불태우면 연기가 넘칠 수 있고, 감정이 과잉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강윤겸이라는 외로운 한 남자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그게 진정한 사랑이었고 그 여자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또 그런 결말을 이룰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매력적이었고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작품을 선택하게 됐습니다."(웃음)

'이브' 스틸 / 사진=tvN


대본에 매료돼 '이브'를 선택했지만, 박병은이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사생활 논란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배우 서예지가 해당 작품으로 복귀했기 때문. '이브'는 방송 전부터 수많은 이들의 이목을 받았고, 일각에서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논란도 있었고, 파격적인 장면도 있어요. 이건 충분히 인지하고 선택한 거기 때문에 저한테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어요. 촬영하다가 논란이 생긴 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부담이 있긴 했지만, 현장에 가서 배우와 배우로 마주하니 편해졌어요. 서예지가 정말 준비를 많이 해왔거든요. 감정적으로 어려운 연기일 텐데,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하나도 놓치지 않았더라고요. '이 배우라면 내 감정을 잘 받아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연기적인 호흡은 정말 좋았습니다."

이런 강윤겸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박병은은 외적인 부분과 내적인 부분 모두 놓칠 수 없었다. 특히 파격적 베드신과 노출신이 포함됐기에 외적인 부분은 더더욱 신경 쓰였다고. 하루에 PT를 두 번씩 받으면서 몸을 만들었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반복하며 유산소 운동도 틈틈이 했다.

"전 정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근육은 늘리고 체지방은 줄였죠. 운동 전에 체지방이 22%였는데, 작품 들어가기 전에는 15%가 됐으니까요. 이렇게 몸을 만든 후 제 몸에 맞게 수트를 준비했어요. 아무래도 강윤겸은 재벌 회장이잖아요. 자기의 틀을 완벽하게 갖춘 남자라고 생각해서 대부분의 수트를 제작했어요."



내적으로는 외로운 강윤겸이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는 캐릭터 잡는데 힘들었다고. 감정을 너무 과잉되게 표현하거나 터트리면 뒤로 갈수록 표현해야 할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았다. 때문에 박병은은 초반에는 생각했던 감정을 응축하고 자제하는 편을 선택했다.

"초반의 감정을 응축하기 위해 현장에서 서예지와 만났을 때 대면 대면하고 밀어내려고 했어요. 현장에서 이라엘과 강윤겸의 관계처럼 말수도 많이 줄였죠. 현장에서 농담하고 웃기는 것들도 조절하려고 했고요. 그래야 이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서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강유겸은 이라엘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를 정도로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박병은은 이런 강유겸의 맹목적인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나아가 남자배우로서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는 캐릭터를 맡게 된 것 자체로 감사하다는 입장이다.

"강윤겸은 혼외자여서 어렸을 때부터 상처와 핍박, 학대를 당한 인물이에요. 단 한 번도 사랑을 해봤다고 생각하지 않죠. 불리한 자신의 위치에서 올라가기 위해 항상 모든 걸 방어하고 차단하고, 철저하게 자기관리만 한 사람인데 그런 그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 거예요. 아마 와르르 무너졌겠죠. 사랑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몸에 상처도 내잖아요. 이런 걸 보면서 이 여자의 상처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그럼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충분히 들 거예요."

"물론 전 강윤겸과 다르죠. 전 그렇게 욕망이 큰 사람이 아니에요. 배우라는 직업이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캐릭터를 매번 연기할 수 없는 거예요. 나와 다른 걸 찾아가는 게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찾자면 닮은 점도 물론 있겠죠. 그래도 더 열심히 캐릭터에 다가가려고 신경 썼어요."

이렇게 세상에 나온 '이브'는 다소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박병은은 시청률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라고. 그는 촬영할 때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는 시청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청률은 안 보는데, 시청자 반응은 찾아보는 편이에요. 가끔 제 연기에 대해 저도 몰랐던 지점이 있더라고요. 또 제 캐릭터가 이렇게 행동했는데,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도 있고요. 연기 모니터 차원에서 보는 거예요. 지금 생각나는 반응은 '엄마랑 두 살 차인데 입덕했어요'예요. 모든 건 연기를 잘해야 멋있어 보이고 섹시해 보이는 것 같아요. 외모가 특출나게 잘생기지 않더라고 연기했을 때 섹시해 보이는 배우가 있는데, 어떨 때는 위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단역을 거쳐 주연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24년이 걸린 박병은은 그간의 연기 인생을 쭉 돌아봤다. 단편, 독립영화 등 닥치는 대로 연기했던 그에게 영화 '암살'이 터닝 포인트였다. 운동화를 팔아서 구한 일본어 선생님에게 일본어 자문을 받고, 일본어 대사를 달달 외워간 갈 정도로 절실한 마음이었다. 또 캐릭터의 성장 배경, 성격, 연애, 학교, 학력, 키, 외모 콤플렉스 등을 분석해 마치 한 권의 논문처럼 작성했고, 일본 의상을 빌려 한 이자카야에서 촬영한 사진을 덧붙였다.

"최동훈 감독님이 마침내 '병은 씨 우리 합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암살'을 통해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팬도 생겼거든요. 그때 노력을 안 했으면 '암살'을 못 만날 수 있는데 그럼 난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도 가끔 해요. 정말 최선을 다해 배역을 만들어간 당시가 행복합니다."

"전 배우라는 직업 자체를 좋아해요. 매번 다른 작품을 통해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는 건 짜릿한 일이거든요.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 지루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배우는 축복 받은 직업이에요. 20년 동안 무명으로 있으면서 주변에서 '다른 일은 생각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배우로 살 생각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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