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원자재 값 급등, 급격한 금리 인상 등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면서 기업회생 과정에서 예측 불허의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로 골프장 가치가 급등하면서 파산 위기였던 사업자가 회생에 성공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재료 값이 치솟고 매출 추정이 어려워지면서 무난할 것 같던 기업회생절차가 중단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A 씨는 5수 끝에 올해 1월 서울회생법원에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아냈고 두 달 만에 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했다.
경기도 모처에 골프장과 골프연습장을 갖고 있던 A 씨는 골프장을 제3자에게 임대 후 매각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했지만 계약 분쟁이 터지며 골프장은 문을 닫고 임차료도 내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A 씨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법원에 네 차례 회생 신청을 했지만 골프장 대출금 때문에 청산가치 대비 계속기업가치가 턱없이 낮게 나오면서 번번이 실패했다.
코로나19는 A 씨에게 뜻밖의 기회가 됐다. 해외여행이 막혀 국내 골프장이 호황을 맞았고 골프장·골프연습장 가치가 3배나 뛰면서 금융기관의 투자금 유치가 가능해졌다. 계속기업가치가 올라가자 A 씨는 2021년 8월 다섯 번째 회생 신청을 했고 법원의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이끌어냈다. 정부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회생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A 씨는 신종 자금 조달 기법을 제시하며 법원의 회생계획안 인가 결정까지 받아냈다.
회생에서는 통상적으로 채무자 자산을 채권자에게 파는 즉시 임대하는 방식의 ‘세일앤드리스백’을 활용한다. 하지만 A 씨는 골프장을 채권자에게 전세로 주고 자신이 임대해 사업하는 ‘전세앤드리스백’ 방식을 구상했다. 골프장을 계속 갖고 있으면서 기업가치가 유지되고 정부 대출 규제를 피해 수익을 내 채무를 갚는 방안이라 법원도 허가했다.
경기 변수로 회생에 성공한 사례가 있는 반면 반대 경우도 있다. 경기도 소재 한 영세 무역회사인 B 기업은 무난한 회생 인가를 기대했다가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날벼락을 맞았다. B 사는 수입 면실을 재가공해 판매하는데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되자 2020년 10월 수원지법에 기업회생을 신청했고 한 달 뒤 법원의 개시 결정을 받은 상태였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국제 곡물 가격이 폭등하고 원료 값까지 뛰면서 발생했다. 1차 실사 때는 B 사 실적이 전년 대비 50% 미만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가 전쟁 발발 이후 이뤄진 2차 실사에서는 상승 폭이 2.6배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됐다. 실적 전망이 오락가락하자 결국 법원은 회생계획 인가 전 폐지 결정을 내렸다.
도산 전문가들은 경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앞으로 개인사업자와 기업회생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존에는 재무 상태, 자산 보유 상황을 중심으로 회생 개시 판단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외부 변수를 상당 부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6~7%대였던 회생 합의 사건 기각 비율은 코로나19 불확실성으로 지난해 9.25%로 치솟았다. 한 도산 담당 변호사는 “올해 금리가 급격히 오른 데다 다음 달이면 정부의 채무상환 유예 조치도 종료되기 때문에 회생 신청자들에게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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