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 매킬로이(33·북아일랜드)는 몸이 두 개 이상이어야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LIV 골프에 맞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해온 그는 타이거 우즈(미국)와 합작해 스포츠·엔터테인먼트 벤처 회사까지 차렸다. 관중친화형 신개념 골프 대회를 만들기 위함인데 LIV로 흐르는 관심을 돌려놓겠다는 의도가 읽혔다. PGA 투어 선수 유출에 대한 최근 대책 회의에서도 매킬로이는 우즈와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우즈는 경기 일정이 없어 자유롭지만 매킬로이는 한 시즌 농사를 마무리하는 투어 챔피언십이 코앞이었다. 행정에 신경 쓰는 사이 경기력은 그만큼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매킬로이는 투어 챔피언십 1라운드를 트리플 보기로 시작했다. 첫 홀에서 3타를 잃고 2번 홀에서도 보기를 적어 첫 두 홀에서 4타를 내놓고 출발했다. 더욱이 페덱스컵 랭킹 보너스 타수에 따라 선두와 6타 차로 시작했던 매킬로이다. 페덱스컵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가 10언더파를 안고 출발했고 랭킹 7위 매킬로이는 4언더파로 시작했다.
모든 상황이 우승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29일(한국 시간) 미국 애틀랜타의 이스트 레이크GC(파70)에서 우승컵을 든 것은 매킬로이였다. 매킬로이는 이날 PGA 투어 플레이오프 최종 3차 대회 투어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2개로 4타를 줄여 21언더파 263타로 마쳤다. 20언더파 공동 2위인 임성재, 셰플러에 1타 앞섰다.
투어 챔피언십 우승자가 곧 페덱스컵 챔피언이다. 매킬로이는 2016·2019년에 이어 다시 페덱스컵 왕좌에 오르며 1800만 달러(약 242억 원)를 손에 넣었다. 페덱스컵 세 차례 우승은 두 차례 우승의 우즈를 밀어낸 이 부문 최다 기록이다. 우즈는 트위터를 통해 “트리플 보기로 한 주를 시작하고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우승했다”고 매킬로이를 칭찬하며 “셰플러도 엄청난 시즌(마스터스 포함 시즌 4승)을 보냈다”고 격려했다.
매킬로이는 선두 셰플러에 6타 뒤진 2위로 최종 4라운드를 출발했다. 2019년에 5타 열세를 뒤집었던 매킬로이는 투어 챔피언십 사상 최다 타수 차 역전 우승 기록을 썼다. 그는 “1라운드 초반만 해도 10타까지 뒤졌지만 골프는 모를 일이었다. 몇 타 뒤지든, 앞서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
매킬로이는 이날 4라운드도 첫 홀 보기로 시작했지만 이후 3연속 버디 등으로 전반에만 3타를 줄였다. 셰플러는 2타를 잃고 있었다. 매킬로이는 12번 홀(파4) 버디로 마침내 공동 선두에 올랐고 14번 홀(파4) 보기 뒤 15번 홀(파3)에서 클러치 퍼트를 넣었다. 10m 거리에서 굴린 공이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 홀 한가운데를 뚫었다. 공동 선두를 되찾은 매킬로이는 포효했고 셰플러의 다음 홀 보기에 단독 선두가 됐다. 두 달 만의 승수 추가로 매킬로이는 PGA 투어 통산 22승을 기록했다.
매킬로이와 비슷한 색의 옷을 입고 동반 플레이한 셰플러는 이날 보기 4개(버디 1개)의 3오버파로 흔들리면서 잔인한 승부의 희생양이 됐다. 매킬로이는 셰플러의 가족에게 다가가 “미안하게 됐다”고 인사했고 셰플러의 아버지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멋진 경기력에 상응하는 결과였다”고 축하해줬다.
한편 LIV 이적이 확실시됐던 캐머런 영(미국)은 한 인터뷰에서 “PGA 투어에 남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은 메이저 대회 디 오픈 단독 2위 등 올 시즌 준우승을 다섯 번이나 기록한 특급 신예다. 투어 챔피언십은 10언더파 19위로 마쳤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자 마쓰야마 히데키(일본)도 LIV행 예상을 깨고 PGA 투어 잔류를 선언했다. 미국 골프위크는 “PGA 투어의 최근 발표가 효과가 있는 모양”이라고 진단했다. PGA 투어는 각 대회 총상금을 대폭 늘리고 투어 간판선수 20명에게 총 1억 달러의 보너스를 안기는 개편안을 이달 25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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