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들에게 불편을 안기는 ‘택시 대란’의 주범으로 문재인 정부 당시 강행 처리한 여객자동차운수법 개정안(일명 타다금지법)이 거론된다. 2년 전 국토교통부는 ‘타다금지법’을 ‘타다활성화법’이라고 홍보하며 “타다가 더 많아지고 다양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법인 택시 기사 3만여 명이 떠났고 타다 기사로 일하던 운전사 회원 1만여 명도 자취를 감췄다. 급기야 정부가 심야 택시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택시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플랫폼 업계는 “규제 혁파 등의 근본 대책이 없는 미봉책”이라고 꼬집는다.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는 원격의료, 리걸 테크(법률 플랫폼) 등 일일이 나열하지 못할 정도다. 전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부터 해소해야 한다.
행정 규제와 디지털법·정책 전문가인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혁신에 대한 규제 정책은 단순히 기존 산업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신구 산업 간 경쟁을 촉진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선보인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자원이지만 기존의 법과 제도에 가로막혀 정체되고 있다”면서 “시대에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규제를 혁파하지 않으면 미래 성장 동력마저 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출범 120일을 맞는 윤석열 정부의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6월 말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란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플랫폼 위에서 국민·기업·정부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공약인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위원회가 발족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대전환을 위한 디지털대전환추진위원회나 국가 기간 시설 해킹 등에 대응할 사이버안보위원회 구성 등 학계의 제안들이 진척되지 않고 있는 점은 아쉽다. 첨단 기술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과학기술보좌관과 디지털혁신비서관을 폐지하고 이를 담당하는 수석실도 만들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다. 이 분야에서는 현재 대통령실에 과학기술비서관만 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위원회가 난립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위원회가 난립하면서 비용 대비 생산성은 떨어지고 정부 정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많았다. 예산을 낭비하고 행정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위원회들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꼭 필요한 위원회는 둬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위원회 조직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가상 자산 이슈의 경우 산업 측면에서 보면 육성해야 하지만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는 규제해야 한다. 신(新)산업의 경우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이슈가 대부분이다.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 형태의 조직은 반드시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ICT 정책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2020년 1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데이터 3법’을 개정해 ICT 산업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공(功)은 인정해야 한다. 데이터 네트워크, 디지털 정부 업무 혁신, 방송 통신 산업 정책 업무를 관장하는 디지털혁신비서관도 신설했다. 이처럼 ICT 산업을 육성할 기반은 마련했지만 ‘진보 정부’이다 보니 개인 정보 보호 이슈 등이 생기면 어김없이 시민 단체에 휘둘렸다. 각종 데이터를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는 마련해놓고 데이터 경제의 꽃을 피우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제도적 기반은 구축해놓고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게 한계로 지목된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 친화적인 데다 신산업 육성에도 관심이 많은 만큼 업계에서 큰 기대를 갖고 있다. 마련된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주면 된다.
-‘타다금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요즘 택시 대란이 벌어지며 시민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는데.
△소비자 편익을 외면하고 기득권에 굴복한 대표적 사례다. 신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기존 사업자 규제도 완화해 우버·타다·택시 등이 서로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했다. 혁신에 대한 규제 정책은 신구 산업 간 경쟁을 촉진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소비자 편익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더 나아가 혁신 모빌리티 사업자들을 제도권으로 수용해 모빌리티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마저 잃었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 문제는 이처럼 규제 만능주의에 젖어 신산업을 고사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대응했나.
△우리가 ‘타다금지법’을 만든 비슷한 시기에 독일은 택시를 이용한 생활필수품과 식료품 구매 대행 서비스를 허용했다. 일본도 택시 기사가 음식배달업을 할 수 있게 했다. 모빌리티 종사자가 배달이나 택배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소득 보전은 물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했던 것이다. 2030년 세계 모빌리티 시장은 1조 5000억 달러(약 2000조 원) 규모로 커지는데 우리만 갈라파고스 규제로 뒤처지게 된 셈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 사례들을 지적한다면.
△핀테크 금융 관련 엄격한 망 분리 및 인터넷전문은행의 과도한 진입 규제, 의료·헬스케어 관련 원격의료 규제, 법률 관련 리걸 테크 규제 등이 있다. 원격의료의 경우 우리나라는 의료법상 의료인 간 원격 자문만 가능하고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 원격 수술, 온라인 의약품 판매 등이 모두 불가능하다. 2020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한시적으로 의사·환자 간 전화 상담·처방이 허용됐지만 의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다시 비대면 진료가 불가능해진다. 리걸 테크에 대한 규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변호사가 아닌 자와의 동업 제한 등이 변호사법에 명시돼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리걸 테크가 기존 시스템에 녹아 있어 법률 서비스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단적으로 독일에서는 법률서비스법을 만들어 변호사가 아닌 자와 수익을 배분하게 하고 있다. 플랫폼의 본질이 비교 추천인데 플랫폼이 법률 서비스를 중개할 수 없게 하는 현행법을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 근본적으로 따져 물을 때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데이터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마이데이터를 강조해왔는데.
△올해 초 금융 분야에서 시작된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도 처음으로 시도되는 만큼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마이데이터는 이곳저곳에 흩어진 개인 정보를 모아 한꺼번에 조회할 수 있는 ‘초(超)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다. 8월부터는 공공 마이데이터 서비스도 도입됐다. 공공 기관과 행정기관이 발급하는 각종 서류를 본인이 직접 발급받아 제출하는 대신 해당 서류를 요구하는 기관에 정보 제공 동의를 하면 서류 발급 기관이 직접 요구 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데이터 경제는 물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핵심 자원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제공되는 정보로는 기본적인 ‘통합 조회’도 어렵고 새로운 혁신 가치를 내놓지 못한 채 정체되고 있다.
-데이터 산업이 답보 상태인 이유가 뭔가.
△불합리한 규제 탓이 가장 크다. 사실 정부가 마이데이터를 도입한 취지는 개인 정보 분석 및 가공을 통한 맞춤형 상품 추천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카드 내역, 보험 정보, 투자 정보 등을 분석해 유리한 금융 상품을 추천하고 소비자는 자신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누리는 게 마이데이터 서비스의 궁극적 목표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금융위원회가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의거해 기존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제공하던 대부분의 비교 추천 서비스가 불법 서비스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취지는 불완전 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인데 역설적으로 소비자의 편익에 반하는 것은 물론 마이데이터 산업의 발전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금융서비스제공법상 ‘금융서비스중개업’ 단일 면허로 여러 업종의 금융 상품을 원스톱으로 중개할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개인 정보 전송 요구권과 개인 정보 관리 전문 기관 지정 규정을 골자로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만큼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정치권이 대승적으로 결단해야 한다.
-개인 정보 보호 등 보안 이슈도 적지 않은데.
△물론 프라이버시 보호나 빅브러더 이슈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마이데이터 서비스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본격적인 데이터 경제를 열기 위해서는 개인 정보 활용과 보호의 균형을 꾀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인 정보 주체의 권리와 이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윤리나 법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법의 과잉 현상이 유달리 심하다. 해당 비즈니스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통해 필요할 경우에만 규제를 도입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법과 제도가 신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He is…
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법학 석사를,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 고시에 합격한 뒤 정보통신부·국무조정실 등에서 근무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방송, 통신, 인터넷, 개인 정보 분야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하버드대 로스쿨 방문학자를 시작으로 행정 규제와 디지털법·정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부터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 데이터인공지능법연구센터 공동대표,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등을 맡고 있다. 또 올해 초 출범한 마이데이터포럼 초대 회장도 맡아 관련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