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스토킹 가해자를 불구속 수사할 경우 위치 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게 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는 조건부 석방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가해자 전주환(31)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데 따른 입장 표명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20일 입장문을 통해 “현행 인신 구속 제도는 구속·불구속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만 가능한 구조로 구체적 사안마다 적절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구속영장 단계 조건부 석방 제도를 도입해 일정한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무죄 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수사의 원칙, 피해자 보호가 조화를 이루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단계의 조건부 석방 제도는 판사가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보증금 납부나 주거 제한, 제3자 출석 보증서, 전자발찌 부착, 피해자 접근 금지 등 일정한 조건을 붙여 피의자를 석방하는 제도다.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지난해부터 조건부 석방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대한변호사협회도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 스토킹 범죄 가해자를 능동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법원이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할 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 씨처럼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서울 지하철 신당역에서 역무원을 살해한 전 씨는 지난해 10월 피해자의 영상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후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원을 향한 비난 여론이 일었다.
스토킹 사건이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대법원은 해당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에도 착수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19일 제119차 전체회의를 열고 향후 스토킹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설정 여부를 심의하기로 했다.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으나 스토킹 범죄는 양형 기준이 없다. 스토킹 범죄에 따른 형량이 재판부 재량으로 제각각이라는 지적이 일자 양형위가 해당 죄목에 대한 양형 기준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양형위는 “스토킹처벌법이 적용된 사건의 양형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고 스토킹처벌법의 개정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스토킹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설정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스토킹 범죄 양형 기준 설정은 내년 4월 출범하는 제9기 양형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