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됐지만 여전히 169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제로 접어들면서 현금 지원성 민생 법안 속도전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종합부동산세 완화법이나 K칩스법(반도체특별법) 등 여당 시절에 주도적으로 추진하거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세운 공약에는 발을 빼고 있다. 여당 때와 야당 때의 입장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이 최근 발표한 7개 중점 추진 법안에는 기초연금 확대법(기초연금법)과 출산보육수당 및 아동수당 확대법(소득세법·아동수당법) 등 포퓰리즘 성격을 띠는 현금 지원 법안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뿐 아니라 지난 대선 기간에도 중점적으로 추진하거나 공약한 내용들이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날치기 논란을 일으킨 쌀값 정상화법(양곡관리법)도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부터 관심을 갖던 현안 중 하나다.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매 회기 여야 농촌 지역구 의원들이 앞다퉈 발의하는 법안이지만 매년 쌀 매입 및 보관에만 조 단위의 예산이 소요되는 점 때문에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예산에 대한 부담이 적은 야당이 되자 이 대표의 관심 사안인 양곡관리법을 단독으로 밀어붙였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의무 조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쌀 시장격리 시기를 미뤘던 것과도 배치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이 양곡관리법 처리에 속도를 내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 “법률로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우려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종부세 완화법과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식은 모양새다. 민주당은 과도한 부동산 규제가 대선 패배의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오자 1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을 15억 원까지 상향하는 종부세 완화법도 발의한 적 있다. 지선을 앞두고 수도권 민심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종부세 협상 과정에서는 정부가 시행령으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60%까지 하향했다는 이유로 과세 기준 상향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반도체특별법 또한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양향자 의원을 앞세워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양 의원이 무소속이 된 뒤 국민의힘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에 참여하자 지역 균형 발전을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