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가교육위원회가 오는 27일 출범한다. 당초 예정보다 출범이 두 달여 지연된 상황에서 교원단체·교사노조 몫인 2명을 태우지 않은 채 ‘개문발차’한다. 정부와 정파를 초월해 국가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조직인 국교위가 우여곡절 끝에 출범하지만 기대 보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설립 추진 단계와 법 통과 당시 제기됐던 국교위 위원 구성의 문제점이 실제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과 국회가 추천한 국교위원 중 상당수가 정치적 색채가 뚜렷해 향후 국교위가 교육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과정에서 이념 논쟁이 벌어지고 정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적지 않은 위원들이 교육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국교위가 제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유명무실화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제기된다.
교육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국교위원 명단을 살펴보면 정치색이 뚜렷한 위원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대통령 추천 상임위원이자 위원장으로 지명된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은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의장을 지냈고,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특별고문과 청와대관리활용자문단장을 맡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국회가 추천한 나머지 2명의 상임위원인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와 정대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도 정치적 색채가 강한 인사다. 국민의힘 몫으로 추천된 김 교수는 2015년 재·보궐 선거 때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 신청을 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몫으로 추천된 정 이사장은 2007년 시민사회계 대표로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해 대표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 밖에 대통령실과 국회가 추천한 다른 위원들도 정치·이념적 색채가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전체 구성에서 보수 인사가 다수를 점한 것으로 분석된다. 교육계에서는 교원단체·교사노조 몫 2명을 제외한 19명 중 보수 성향의 친정부·여당 인사가 11~12명, 진보 성향의 친야당 인사가 7~8명선이라고 보고 있다. 교원단체·교사노조 몫 위원은 보수와 진보가 각 1명씩 참여할 예정이어서 위원회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애초 민주당이 법안 발의 당시 위원 5명을 대통령이 추천할 수 있도록 위원 구성을 설계했기 때문에 국교위 구성이 집권 여당의 정치적 성향과 궤를 같이 할 수 밖에 없다. 야당으로선 ‘자승자박’인 셈이다. 민주당 내에선 “이럴려고 법안을 강행처리했나”라는 한탄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위원 추천에서도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과 야당 모두 정파적으로 실시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 개정과 같은 중요 사안을 다루면서 국교위원들이 이념에 따라 양분돼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대립·갈등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교육계 인사는 “민주당은 재집권을 염두에 두고 국교위를 설계하고 법을 강행처리했겠지만 애초 위원 추천기관과 인원을 설정할 때부터 한계가 명확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바탕으로 정부에 따라 바뀌지 않는 교육정책을 수립한다는 생각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이념적 색채 못지 않게 위원 구성에서 일부 위원들의 경우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과정이나 대입제도 개편 등은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문제여서 현장에 대한 이해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추천된 위원 중 비전문가가 적지 않다. 김태준 교수는 경제·금융 전문가이고, 대통령이 추천·지명한 강혜련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김정호 전 자유기업원장은 경영·경제학자다. 국회의장이 추천한 이승재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장과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가 추천한 이영달 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도 교육 비전문가로 분류된다.
또 다른 교육계 인사는 “정치권은 학생·학부모 몫 위원마저 철저히 자기 진영에 가까운 인물들을 추천했다”면서 “중도적 성향의 전문가 보다는 우리 진영, 비전문가라도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쓴다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 교육에 무슨 발전이 있겠으며 비전을 기대하겠느냐”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