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박 7일 간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무리하고 24일 귀국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과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이뤄진 이번 순방에선 윤 대통령이 직접 공급망 안정, 첨단 기술 협력 등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해 직접 나서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반면 한일 정상회담 과정에서 불거진 저자세 외교 논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등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짧게 3번 만난 바이든…IRA 대응에 집중
이번 순방에서 당초 예정됐던 한미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내 정치 문제로 뉴욕 체류 기간을 줄인 탓이다. 대신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세 차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인플레이션방지법(IRA)에 대한 우리 측의 우려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18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찰스 3세 영국 왕 주최 리셉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났고, 21일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 주최 리셉션에 참석했다. 같은 날 윤 대통령은 한미 스타트업 서밋, K브랜드 엑스포 등 뉴욕에서 계획했던 일정들의 불참을 감수하며 예정에 없었던 글로벌펀드 제 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해 바이든 대통령과 짧은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 결과 한미 양국은 양측의 국가안보회의(NSC)에서 IRA가 한국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들을 검토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IRA 관련) 우리 업계의 우려를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설명 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라며 “우리 측 우려를 바이든 대통령이 잘 알고 있다고 인정한 것을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 역시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회동에서 IRA에 대한 한국의 우려와 관련해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이 문제가 정상 간 회동의 논의 주제 중 하나였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게) 우리 팀이 이 법의 특정 조항에 대한 한국의 우려와 관련, 한국 정부와 관여 채널을 유지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한미 통화스와프도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미는 금융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장치를 실행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는데,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통화스와프도 당국 간 협의의 대상이 되는 유동성 공급장치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북미 투자가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글로벌 기업들의 11억5000만 달러 규모 한국 투자를 이끌어내면서 대통령실은 “세일즈 외교가 본격화했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대통령실은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 벤쳐캐피탈 3개사와 2.2억 달러(약 3130억 원) 규모의 ‘한미 글로벌 벤처펀드’ 결성에 관한 MOU를 체결했으며, 40여 개 우수 스타트업 대상으로 투자설명회(IR)를 열어 총 1억 달러(약 14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가 예상된다”며 “한미 기업간 1:1 수출 상담도 진행해 600만불(약 85억원) 이상의 수출계약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캐나다서 핵심 광물 공급망 확보에 주력
윤 대통령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통해선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핵심 광물 공급망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우리나라 배터리 생산 업체들이 핵심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함이다. 캐나다는 글로벌 니켈 매장량 5위, 정련 코발트 생산 3위의 세계적 광물 수출국이다. 캐나다에서 수입한 광물로 배터리를 생산할 경우 미국 판매가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과 캐나다 기업 간의 핵심 광물 협력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며 “미국이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법안은 캐나다에 일자리와 투자라는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올 것이다.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간의 공급망 연결이 중요해지는 지금, 캐나다와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캐나다 광물 업체 엘렉트라·애벌론·스노레이크와 각각 업무협약을 맺으며 배터리 핵심 원재료인 황산코발트와 수산화리튬 등을 공급 받게 됐다.
인공지능(AI) 기술 협력도 성과로 꼽힌다. 한-캐나다 양측은 정상회담은 공동기자회견문에 “AI 선진국인 캐나다와 디지털 혁신국인 한국은 글로벌 디지털 전환을 위해 협력해 가기로 약속했다”고 명시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우리나라의 9개 기업·기관과 캐나다의 3개 기관 사이에 AI 협력을 위한 MOU가 체결됐다. AI 기본·응용 기술, 인력 양성, 윤리 확보, 정보 교환 등 다방면의 협력이 포함돼 있다.
대통령실 “자유를 위한 국제연대 강화”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을 통해 경제 성과 외에도 “자유를 위한 국제연대 강화라는 대외정책의 핵심기조를 각인시켰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보도자료에서 “윤 대통령은 제 77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변환기 국제문제 해법으로 자유와 연대를 제시하고, 에너지·기후·보건위기·디지털격차 등 주요 국제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의 적극적 기여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영국 방문에 대해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에 참석하고, 찰스 3세 국왕과의 환담 및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와의 상견례를 통해 자유세계와의 연대 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자평했다. 또 순방 기간 중 한국전 3대 참전국(미국, 영국, 캐나다)을 모두 방문함으로써 핵심 우방국인 이들과의 연대 및 협력 기반을 한층 강화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英조문 논란부터 비속어 사태까지
한편 캐나다를 제외한 순방 일정 전반에 돌발 변수가 발생하면서 각종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가장 먼저 윤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전날인 18일 여왕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유해를 참배하려던 계획이 불발됐다. 런던 도착 당일 교통 상황이 좋지 않아 영국 왕실 측 안내에 따라 비슷한 상황의 다수의 국가 정상들과 함께 장례식 당일 조문록을 작성했다 게 대통령실의 일관된 설명이다. 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준비 부실’ ‘조문 없는 조문 외교’라고 공세를 폈다.
2년 9개월여 만에 열린 한일정상회담엔 저자세 논란이 일었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일본 총리를 찾아간 점이나, 회담장에 태극기 등이 준비돼 있지 않았던 점 등이 야권 공세의 타깃이 됐다. 우리 측이 ‘약식 회담’이라는 표현을 쓴 반면 일본 측은 ‘간담’을 사용해 회담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회담은 30분 간 약식으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윤 대통령이 21일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직후 “국회에서 ○○○○ 승인 안 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들리는 발언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미 의회를 깎아내리고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를 미 의회로, △△△을 '바이든'으로 해석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미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의 거대 야당을 지목한 것이고 △△△도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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