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신약 '오니바이드'에 건강보험 적용에 이어 백혈병 신약 ‘온카스파’ 급여화를 앞당기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멜라니 로르세리(사진) 한국세르비에 대표는 26일 서울경제와 만나 “췌장암이 전이되어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는 한 환자분으로부터 손 편지를 받고 가슴이 뭉클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오랜 기간 고혈압 등 심혈관질환 치료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온 다국적 제약사 세르비에는 몇년 전부터 항암제 전문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샤이어, 아지오스파마슈티컬즈 등을 상대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진행하며 다수의 혁신신약을 확보한 것이다. 5년 생존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해 대표적인 난치암으로 꼽히던 췌장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 ‘오니바이드’도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야심차게 진행 중인 글로벌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들여다봐도 췌담도암, 혈액암과 같은 중증 난치암 분야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 치료제 ‘온카스파’의 국내 보험적용 시기를 앞당기는 데 사활을 걸었다.
온카스파는 약물의 반감기(혈중 농도가 절반으로 감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를 늘리는 페길레이션(PEGylation) 기술을 적용해 14일에 1번만 투여하도록 개선한 신약이다. 격일로 투여해야 했던 기존 백혈병 약물과 비교하면 편의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그간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수입됐지만 세르비에가 샤이어로부터 판권을 확보한 이후 새로 허가를 받으면서 안정적 국내 공급이 가능해졌다. 로르세리 대표는 “주요 투여대상이 소아청소년인 만큼 새로운 약물에 대한 환자들의 수요가 매우 높다”며 "아직 비급여 상태여서 PMS(시판후조사연구) 등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비에 본사가 있는 프랑스 국적으로 제약바이오업계에서 20여 년의 경력을 쌓아온 로르세리 대표는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1월 한국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국내에서 세르비에 약물로 치료받는 환자는 한해 85만 명에 달한다. 팬데믹 기간 의약품을 차질 없이 공급하고, 임직원들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신경 쓰다보니 어느덧 2년이 되어간다.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내 다양한 지역을 총괄했던 그가 경험한 한국 의약품 시장은 어떨까. 로르세리 대표는 “한국의 의약품제도는 다른 국가들과 차이가 커서 적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며 “프랑스 본사에서는 '좁은 문'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털어놨다. 보건의료시스템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지만, 신약 허가 이후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여러 규제기관의 관문을 거쳐야 하다 보니 실제 환자에게 처방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려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에 진출한 많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로르세리 대표는 “췌장암 환자로부터 받은 손 편지를 임직원들과 함께 돌려보며 난치암 치료제 공급의 사명감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며 “세르비에가 개발 중인 혁신 항암제들을 하루 빨리 한국의 암환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앞서 여러 제약바이오기업을 거쳤던 로르세리 대표는 세르비에만의 강점으로 독특한 기업 구조를 꼽는다. 회사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비영리 재단이 갖는다는 것이다. 실제 세르비에는 자본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일체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도록 분리 운영하고 있다. 또한 수익의 100%를 연구개발(R&D) 등 치료적 발전을 위해 재투자한다. 유독 치료가 어려운 난치암 분야 파이프라인을 단기간 내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도 그러한 본사의 철학과 관련이 깊은 셈이다.
로르세리 대표는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혁신 신약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며 "기존 보건의료시스템 중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파악하고 방향성을 제시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가 내세운 공약대로 난치암과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마련된다면 혁신 신약의 접근성이 한결 높아질 것”이라며 “더 많은 환자들이 혁신 항암제의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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