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 7192명. 지난달 1일(이하 한국 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독일의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유로2022 결승전에서 집계된 관중 수다. 전체 대회 기간에는 역대 최다인 총 57만 4865명(31경기·평균 1만 8544명)의 관중이 몰렸을 정도로 잉글랜드 내 여자축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달 24일 아스널 위민과 토트넘 홋스퍼 위민의 여자슈퍼리그(WSL) 경기에도 4만 7367명이 입장해 리그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웠다.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 내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영국 BBC에 따르면 UEFA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2033년 유럽 여자축구의 상업적인 가치가 5억 7800만 파운드(약 8959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자축구가 여전히 비인기 종목으로 취급받고 있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달 3일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과 자메이카의 A매치 평가전에서는 150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장 수용 인원(약 3만 5000석)의 2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WSL 첼시 레이디스에서 8년간 활약한 뒤 올여름 여자축구 WK리그 수원FC 위민에 입단한 한국 여자축구 간판 지소연(31)도 “유럽 여자축구 시장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은 유럽과 아직 격차가 있다”고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
하지만 암울하기만 할 것 같던 한국 여자축구에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인기리에 방송 중인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의 영향으로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성과 여성 스포츠를 구분 짓는 벽이 허물어지면서 보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MZ세대 여성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전 여자축구 선수 주수진(29) 씨는 “함께하는 운동을 찾는 20~30대 여성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축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며 “개인주의가 강한 시대에 팀 스포츠의 매력을 느끼며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평했다.
프로축구 K리그 FC서울은 여자축구 열풍에 발맞춰 올해 여성축구교실을 열었다. FC서울 관계자는 “축구를 배우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 올해 4월부터 교실을 열었다”며 “20~30대 직장인 여성들이 주로 나오고 있고 15~18명 정도 수업을 듣고 있다. 본점은 현재 가입 대기자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최근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회사원 송수현(28) 씨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배우려고 했는데 최근 여자축구를 가르쳐주는 곳이 많아 배워보고 싶었다”며 “특히 사람들과 팀을 이뤄 함께 뛰니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여자축구 열풍을 이어가고자 2010년부터 10년 넘게 개최했던 여자 대학생 동아리 축구 대회를 올해부터는 전 연령대의 성인 여자 풋살대회로 확대 개편했다. K리그 여자 풋살대회 퀸컵(K-WIN CUP)으로 재탄생한 이번 대회는 다음 달 1일부터 2일까지 이틀간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다. 총 12개 팀에 출전하는 참가 인원은 160명에 달한다. 연맹은 “새로 단장한 퀸컵을 통해 여자축구의 저변 확대와 스포츠 문화 활성화를 위해 힘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인기 종목으로 취급됐던 한국 여자축구는 골때녀의 인기와 팀 스포츠를 찾는 MZ세대 여성들의 관심에 힘입어 참여 인구 증가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열풍이 여자축구 대표팀과 WK리그 등 엘리트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지켜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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