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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고택엔 기품 흐르고…가야금 타는 정자 풍류 넘치네

■경남 함양의 ‘생활관광’

청아한 계곡·숲 따라 단아한 정자들 우뚝

개평한옥마을·세계유산 남계서원 '고즈넉'

멋 지키며 전통 잇는 선비마을로 시간여행

솔송주·산삼캐기 체험도 관광객 발길 잡아

남강 상류 화림계곡의 동호정에서 진막순 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수행한 장만리의 후손들이 1890년께 지은 것이다. 내부의 화려한 그림이 인상적이다.




수백 년 역사의 한옥 60여 채가 있는 ‘개평한옥마을’, 하동정씨 문중의 솔잎술인 ‘솔송주’로 만드는 칵테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남계서원’, 정자와 누각을 따라 걷는 6㎞의 ‘선비문화탐방로’, 동호정에서의 국악 감상, 1100년 된 인공림인 ‘상림’, 지리산에서의 산삼 캐기 체험, 한옥 민박에서의 하룻밤 등등.

9월 29~30일 한국관광공사의 ‘생활 관광’ 팸투어를 따라가 본 경상남도 함양군의 멋은 끝이 없었다.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임금이 거주하는 서울을 기준으로 왼쪽·오른쪽이라는 의미)’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선 시대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영남 사림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함양 전체에 선비들의 풍류가 짙게 배어 있다.

개평한옥마을에 있는 일두 정여창 고택으로 일두의 생가 자리에 1570년 지어졌다.


◇‘풍류 함양’에서의 선비 문화 체험=개평한옥마을에는 한옥들이 멋을 지키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1570년 지어진 일두 정여창(1450~1504) 고택을 비롯해 1880년에 지어진 하동정씨 고가, 1838년에 지어진 오담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등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한옥인 일두고택은 정여창 생가 자리에 지어진 후 후손들에 의해 여러 번 중건됐다. 1만㎡의 대지 위에 행랑채·사랑채·안채·곳간·별당·사당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함양 유학의 상징인 남계서원은 일두 정여창을 모시는 곳이다. 1552년에 지어졌고 1556년 ‘남계’라는 사액을 받아 경상북도 영주의 소수서원에 이은 두 번째 사액서원이 됐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남계서원의 전경이다.


남계서원은 출입문인 풍영루와 강당·동재·서재·경판고·사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비스듬한 언덕에 따른 ‘전학후묘’ 형태라는 국내 서원 형태의 효시라고 한다. 즉 낮은 곳에서 공부하고 높은 곳에 사당을 둔다는 의미다.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 때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함양은 선비 마을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 곳 세워져 있다. 현재는 남강 변을 따라 농월정-동호정-군자정-거연정을 잇는 6㎞의 ‘선비문화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옛 선비들이 지나쳤던 짙은 숲과 맑은 계곡, 단아한 정자가 어우러진다. 특히 동호정에서는 우리 국악 공연을 만날 수 있다. 한국국악협회 함양지부장을 맡고 있는 진막순 선생이 가야금으로 ‘아리랑’과 ‘너영나영’ 등 연주를 들려줬다.

함양에서 가장 유명한 정자인 농월정 모습. 아쉽게 방화로 소실된 후 2015년 복원된 것이다.




물론 함양의 역사가 조선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함양에는 11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 ‘상림’이 있다. 신라 시대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곳이다. 최치원은 함양 가운데를 흐르는 강물인 위천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숲을 조성했다. 120여 종의 낙엽 활엽수와 2만여 종의 식물들이 1.6㎞의 둑을 따라 심겨 있다.

먹거리도 소홀하지 않다. 개평한옥마을에는 하동정씨 문중에 대대로 내려온 530년 전통의 가양주 ‘지리산 솔송주’가 있다. 송순과 솔잎으로 빚었는데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주로 선정됐으며 이후 다양한 공식 행사에서 건배주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40년 경험의 심마니가 재배하는 산삼농원에서 산삼(산양삼) 캐기 체험도 했다. 산양삼과 인삼, 약초가 즐비한 안의시장에 가면 함양에서 나는 다양한 약초를 구경하고 구매할 수도 있다.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서는 한옥 민박이 제공된다. 일로당 한옥스테이, 남계 한옥스테이, 지리산 태고재 등 3곳의 한옥 민박에서 숙박할 수 있다.

산삼농원에서 캐낸 산삼(산양삼) 모습.


◇숙소·교통 인프라와 킬러 콘텐츠 부족은 약점=그럼에도 지금까지 함양 관광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관광공사 측은 이에 대해 “역사 문화가 잘 보존돼 관광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관광 상품화가 미흡했고 주변 관광지와의 연계 부족으로 체류형 생활 관광 비중이 높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로서 함양군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함양군은 ‘함양 온데이(on day)’라는 3박 4일간의 생활 관광 프로그램을 최근 시작한 상태다. 방문자들은 한옥 숙소에서 묵고 지역의 문화를 둘러보며 솔송주와 산삼 등을 체험하는 것이다.

개평한옥마을에는 시음할 수 있는 다양한 솔송주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해소되고 국내 관광이 다시 활성화하는 가운데 특정 지역에만 집중하는 국내 관광 시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재연되고 있다. 다만 최근 일과 휴식의 조화, 한 달 살기, 저밀도 여행지 선호 등의 트렌드 변화 과정에 장기 체류와 지역 문화 경험을 동시에 만족하는 ‘생활 관광’ 차원에서 함양 같은 그동안의 소외 지역들이 부각될 여지가 있는 상황이다.

다만 전반적인 숙박 여건이나 교통 등 기본 인프라가 부족한 형편이어서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실정이다. 흔한 콘텐츠로는 이미 ‘눈이 높아진’ MZ세대 등을 만족시키는 데 어려움도 있다. 김성훈 한국관광공사 국민관광실장은 “지역의 독특한 생활 양식과 스토리를 발굴하고 관광 자원화해 지역 관광 및 경제에 기여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글·사진(함양)=최수문 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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