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속, 아이들은 노동 지옥으로 내몰린다. 사탕 발린 말로 유혹하고 계약의 허점을 이용해 아이들을 착취한다. 지독한 고통 속 아이들은 울부짖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화 '다음 소희'는 아이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사람들에게 사건의 심각성을 일깨우며 다음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다음 소희'(감독 정주리)는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여고생 소희(김시은)가 겪게 되는 사건과 이에 의문을 품는 형사 유진(배두나)의 이야기다. 소희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들뜨지만, 실상은 기대와 다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노동 착취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콜센터는 지옥과 다름없다. 고통받던 소희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유진은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마음에 진실을 파헤친다.
누가 소녀를 지옥으로 내몰았는가. 진실을 쫓던 유진 앞에 나타난 건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이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열악한 환경으로 아이들을 내보는 학교와 선생님,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는 교육청, 이를 악용해 아이들을 착취하는 업체까지 누구 하나 아이들을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 이들은 도리어 사건을 파는 유진에게 "내 탓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 감독은 콜센터에서 착취당하는 소희뿐 아니라 공장, 택배 회사 등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그린다. 그는 현장실습 노동 착취가 단순히 소희만의 사건이 아닌,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일이라는 걸 강조한다. 이전 소희가 고통스러워했고, 지금 소희가 눈물 흘리고 있으며 그리고 다음 소희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다.
소희는 스스로를 포기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이들은 작은 각자의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소희를 외면한다. 친구들은 면접, 업무 등으로 소희와 함께 있지 못하고, 소희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슈퍼 주인은 갑자기 몰린 일로 그에게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한다. 이는 "만약 한 명이라도 함께 있어줬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와 안타까움을 관객들의 마음에 물들게 한다.
그럼에도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는 유진처럼, '다음 소희는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작품 속 유진처럼 뉴스와 교양 프로그램 등이 사건을 조명해 세상에 알렸다. 작품도 비슷한 역할을 할 거다. 관객에게 다시 한번 사건을 전하고, 마음속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넣어 심각성과 경각심을 일깨우게 만든다.
1부와 2부로 나눠진 구성은 감독의 세심한 시선이 깔려 있다. 1부에서는 온전히 소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2부부터는 유진이 등장해 사건을 파헤치는 구조다. 1부가 소희의 시선으로 흘러간다면, 2부는 같은 인물과 공간을 유진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린다. 사건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형태다. 이는 카메라 워킹으로도 표현된다. 1부는 소희의 뒤를 따라가며 흔들리는 카메라 기법이 사용되고, 2부는 객관적인 시선을 강조하게 위해 카메라를 고정시킨다.
소희를 연기한 김시은 연기는 작품의 중심을 잡는다. 춤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여고생의 모습부터 노동 착취를 당한 직후 망가지는 내면까지 서서히 변하는 감정선을 깔끔하게 표현한다. 콜센터 입사 초반, 어리바리하게 고객을 대하는 얼굴과 익숙해지면서 감정 없이 고객을 대하는 표정과 목소리는 극과 극이지만, 관객이 받아들이기 수월하다. 김시은이 세밀하게 변하는 소희의 얼굴을 관객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변주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관련기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