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을 핵으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한 원칙.’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만이라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
여의도에 때아닌 핵무장론이 화두다. 여권을 중심으로 북한의 안보 위협에 맞서 핵을 개발하자는 주장까지 쏟아지고 있다. 물꼬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텄다. 그는 “미국이 괌과 오키나와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을 무릅쓰고 반격하겠느냐”며 핵무장론에 불을 지폈다. 곧바로 김기현·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핵 개발을 추진하자”면서 가세했다.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유승민 전 의원조차 “우리도 게임체인저를 가져야 진정한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거들었다. 모두 자천타천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물론 ‘진심’으로 제안하는 안보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발언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당권 경쟁이 본격화되는데 때마침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 북의 도발도 이어지고 있으니 자신의 ‘안보관’을 선명히 드러내기에 좋은 기회다. 이를 십분 활용해 보수 지지층에 눈도장을 찍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들이 노리는 자리가 ‘집권 여당 대표’라는 점이다. 일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고 내뱉기에 ‘핵무장’이 가지는 무게는 너무 무겁다. 자칫 잘못하면 국제사회에 ‘긴장 강화’와 ‘군비경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코리아디스카운트가 상수인 우리 경제에 짐만 지우는 시나리오다.
실질적으로 핵무장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핵 개발’을 단행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해서다. 곧바로 ‘문제 국가’로 찍히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어질 테다. 대외의존도가 80%인 대한민국으로서는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정 비대위원장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무효화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공동선언은 노태우 정부 북방 외교의 대표적인 성과다. 이후 모든 정부에서 한반도 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삼아왔다. 지지율 부진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의 30년 자산까지 포기해야 할 일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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