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위의 반란’이다. 우승 목표보다 내년 시드 걱정이 더 컸던 상금 랭킹 87위 유효주(25·큐캐피탈 파트너스)가 선물 같은 데뷔 첫 우승을 안았다. 이제 당당히 ‘별’을 달고 제주 서귀포의 핀크스GC로 향한다. 27일부터 나흘 간 핀크스에서 열리는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8억 원)에서 유효주는 주목해야 할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유효주는 23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CC(파72)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위믹스 챔피언십에서 3라운드 합계 10언더파 206타로 우승했다. 9언더파 공동 2위 홍정민과 박도영을 1타 차로 제쳤다. 우승 상금은 1억 8000만 원. 최근 2년 간 쌓은 상금과 거의 맞먹는 돈을 한 번에 거머쥐면서 시즌 상금 30위(약 2억 6000만 원)로 57계단을 뛰어올랐다. 우승이 아니면 시즌 종료 뒤 시드전에 끌려갈 위험이 컸지만 이제 상금 순위를 확인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번 우승으로 2년 시드를 확보해 2024시즌까지 걱정 없이 1부 투어를 뛸 수 있게 됐다.
선두 한진선에 2타 뒤진 공동 3위로 3라운드에 나선 유효주는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타를 줄였다. 170㎝ 큰 키를 이용해 270야드 넘는 드라이버 샷을 두 번이나 찍은 그는 16번 홀(파5) 버디로 공동 선두에 오른 뒤 마지막 18번 홀(파5) 버디로 연장전을 지워버렸다. 16번 홀에서는 277야드 장타를 뿜으며 2m 안쪽 버디를 잡았고 18번 홀에서는 정교한 어프로치 샷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200야드 남짓한 거리를 남기고 유효주의 2온 시도는 그린 오른쪽 러프로 갔다. 핀까지는 약 20야드. 우승 여부가 걸린 단 하나의 샷이었지만 유효주는 시간을 길게 끌지 않고 과감하게 클럽을 들었다가 내렸다. 결과는 완벽에 가까웠다. 홀 40㎝ 옆에 갖다 놓아 가볍게 버디를 잡은 뒤 유효주는 빗속에서 환한 미소를 드러냈다.
2017년 1부 투어에 데뷔한 유효주는 상금 50~90위권에 머무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상금 60위 커트 라인을 통과하지 못해 시드전에 단골로 끌려가야 했고 2019·2020시즌은 2부 투어를 뛰었다. 2019년 말에는 은퇴 고민까지 했다. 마지막 노력으로 대대적인 스윙 교정에 매달린 결과 올 시즌 막바지에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 우승 경력의 아버지를 닮아서 인지 유효주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테니스, 농구, 피겨 스케이팅을 했다. 골프에는 중1 때 입문했다. 유효주는 “아빠가 캐디를 맡을 때 꼭 우승을 하고 싶었는데 오늘 이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리더 보드 맨 위에 제 이름이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마지막 홀은 오히려 긴장이 덜 됐다. 우승이고 상금 순위고 생각지 말고 하던 것만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었다”며 “첫날 샷 이글로 시작하면서 느낌이 좋았고 오늘은 좋아하는 동생들(김우정, 이지현)이랑 같은 조로 쳐서 즐겁게 경기했다. 첫 우승을 발판 삼아 2승, 3승까지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중반까지 선두부터 2타 사이에 8명이 몰리는 접전이었다. 중후반까지 선두를 지킨 상금 91위 박도영은 후반 9홀에 버디 1개에 그치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상금 80위 김우정(8언더파 공동 4위)은 17번 홀(파3) 스리 퍼트 보기가 뼈아팠다. 박도영과 김우정 둘 다 데뷔 첫 승을 다음으로 미뤘다.
대상(MVP) 포인트 1위 김수지는 8언더파 공동 4위에 올라 포인트 2위 박민지와 격차를 조금 더 벌렸다. 부상으로 이번 대회를 건너뛴 상금 1위 박민지는 서경 클래식에서 김수지와 정면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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