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량발전상을 받은 김수지(26)는 올해는 대상(MVP)과 최소타수상·상금왕까지 3관왕에 도전할 만큼 몇 계단을 더 올라섰다. 두 시즌 동안 쌓은 통산 4승이 모두 가을에 나온 터라 ‘가을 여왕’이라는 근사한 별명까지 얻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6년 차 김수지는 이렇게 투어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모든 샷을 마지막인 것처럼 혼신을 다해 치고 걸음걸이에서도 뭔지 모를 결의가 느껴지는 김수지를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고정 코너 ‘18문 18답’을 통해 만났다.
-2020시즌 상금이 4800만 원이었는데 올 시즌은 상금이 10억 원이 넘습니다. ‘10억’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이 안 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통장에 들어와 있겠지만 실감이 안 나고 크게 와닿지가 않는 느낌이에요. 그 돈으로 뭐할 거냐고요. 기부도 할 예정이고 가족들이랑 여행도 갈 계획입니다.
-‘가을 여왕’이라고 하지만 사실 시즌 내내 페이스가 좋아요. 유지의 비결이 있을까요.
△시즌 중에도 기술적으로 다듬으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편인데 그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한 대회 끝나면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흐트러지게 마련이기 때문에 교정하고 보완해야죠. 월요일 스케줄요. 월요일도 연습장 가서 레슨받고 연습하는 경우가 많아요. 올 초부터 만족할 만큼 성적이 나오고 있었는데 마침 가을에 우승이 나와서 좋은 별명도 얻게 됐네요.
-제일 좋아하는 계절도 원래 가을이었나요.
△네, 가을에 태어났기도 하고 가을 소풍도 떠오르고 해서…. 가을은 짧으니까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경기 중 갤러리한테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뭔가요.
△이름을 불러주시는 자체가 아직도 신기하고 감사해요. ‘엔딩을 잘한다’ ‘18번 홀에서 잘 친다’ 이런 말들이 특히 기억에 남고요.
-‘내가 생각해도 나는 노력파다’라고 느꼈던 경험은.
△천재였던 적은 없었고 저는 스스로 노력파라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해야 계속 노력할 수 있는 것도 같고요. 아마추어 때 손목 부상 때문에 대회를 많이 못 나갔어요. 내세울 성적이라면 경기도대회 우승 정도예요. 손목이 안 좋으니 계속 쇼트게임만 연습했는데 그때 연습이 몸에 밴 것도 같아요.
-내 골프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언제였고 어땠나요.
△2020년 시드전을 갔다 오면서 제 골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됐고 새롭게 바꾸는 과정이 힘들었어도 정말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지난해 첫 우승도 빼놓을 수 없고요. ‘나도 우승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 많이 생기면서 골프가 많이 달라진 듯해요.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해 골프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네, 그렇게 시작하게 됐는데 굉장히 재밌었어요. 그래서 엄청 많이 쳤고요. 초등학교 수업 끝내고 오후 10시까지도 쳤어요.
-골프 선수로서 겪은 최고의 하루, 최악의 하루는.
△최고의 하루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승했던 날이죠. 개인 최소타인 9언더파 63타 친 날도 최고였고요. 최악은 잘 잊어버리는 편이에요. 성공하고 기쁜 날보다 안 좋고 실패하는 날이 더 많은 법이니 받아들이고 또 잊어버려야죠.
-코스에서 긴장되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캐디 오빠랑 ‘어제 저녁에 뭐 먹었냐’ ‘오늘은 뭐 먹을까’ 이런 얘기하면서 머리를 비우죠.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는 꼭 지킨다’하는 게 있나요.
△퍼팅 연습 매일 집에서도 1시간씩 하는 것. 그리고 아침밥 꼭 챙겨 먹기요. 하늘이 두 쪽 나도 아침밥은 반드시 먹어야 해요.
-보물 1호는.
△강아지 두 마리요. 제리, 까까. 둘 다 치와와예요. 이름은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지었어요.
-여동생은 김수지 선수한테 어떤 존재인가요.
△동생이지만 의지하게 되는 고마운 친구. 골프를 같이 시작했는데 동생은 중간에 그만두고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갔어요. 동생이 쓴 글을 보는 게 좋아요. 추천하는 소설도 즐겨 읽고요.
-가장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은 뭔가요.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 개그맨 이용진 씨 나오는 거요. 드라마도 좋아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유튜브로 요약본 챙겨봐요.
-골프 말고 제일 좋아하는 것, 가장 잘하는 것은 뭐예요.
△제가 아직 그걸 못 찾았네요. 그림 그리는 데 취미를 붙여보려 했는데 저랑은 잘 안 맞더라고요. 중학생 때까지는 수학을 좋아해서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있어요.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잖아요. 시즌 뒤 휴가 계획이 궁금해요.
△전지훈련은 베트남으로 갈 예정이고요. 1월에 잠깐 시간이 있을 듯한데 이제 슬슬 계획 짜봐야죠.
-하루 동안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먹고 싶었던 것 다 먹어야죠. 평소에 튀긴 음식이나 맵고 짠 음식은 자제하는 편이라 완전한 자유가 생기면 못 먹었던 음식을 먹고 싶어요. 쭉 집에 있으면서요. 매주 대회 다니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거든요.
-5년 뒤의 김수지는 어떤 모습일까요.
△여전히 대회를 뛰고 있을 거예요. 지금보다 내공이랑 노하우가 더 많이 쌓여서 더 단단한 선수가 돼 있지 않을까요. 몇 년 뒤 기회가 생기면 일본이나 미국 투어 Q스쿨 나가고 싶어서 다른 환경에서 뛰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김수지의 골프를 키워드 하나로 소개한다면.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 ‘노력’ 그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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