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27일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2.0%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7월 0.5%포인트, 9월 0.75%포인트 인상에 이은 두 번째 자이언트스텝이다. ECB는 단기예금금리도 1.5%로 0.75%포인트 올렸다.
유로존 내부에서 급격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ECB는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너무 높으며 장기간 목표치를 상회할 것”이라며 “2%의 중기 인플레이션 목표에 복귀할 수 있도록 금리를 더 인상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향후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유로존은 최근 에너지난 등으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지난달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9.9% 상승했다.
ECB는 이와 함께 은행들에 제공해오던 초저리 대출 프로그램인 목표물장기대출프로그램(TLTRO Ⅲ)의 유동성 공급 조건도 변경했다. ECB는 “TLTRO에 적용되는 금리를 다음 달 23일부터 재조정하고 자발적인 조기 상환 날짜를 제공하기로 했다”며 대차대조표 축소의 첫 단계를 밟았다.
하지만 유럽 곳곳에서 긴축 속도를 신중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어 ECB의 추가 긴축 속도가 유지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26일 의회 연설에서 “ECB는 매우 성급한 선택을 내렸다”며 “7월부터 순채권 매입을 종료하기로 한 ECB의 결정과 금리 인상이 맞물려 공공부채가 증가한 회원국들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도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통화 공급과 국민소득 증가 때문이 아니다”라며 ECB의 공세적 행보에 불만을 표시했다.
유럽 정치권이 이처럼 불안해하는 것은 치솟는 금리가 자칫 경기 침체를 앞당겨 고용 불안 등 사회 문제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동안 각국 정부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며 “곳곳에서 임금 인상 압력이 높아지고 노동자들의 파업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도 각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국민들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덜어줄 보조금을 지급하려는 상황에서 ECB의 공세적 긴축은 환영받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과감한 긴축이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은 최근 경제지표로도 드러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에 따르면 9월 유로존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1로 팬데믹 기간인 2020년 1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겨울철이 다가오며 유럽 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간 균형 맞추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내부 균열이 커질 경우 ECB가 강경한 긴축 기조를 꺾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폴리티코는 “일부 회원국들이 ECB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통화정책 입안자들이 점점 더 많은 정치적 압력과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며 “혹독한 겨울과 강한 불황이 닥치면 향후 논쟁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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